여행이야기(경기도)

[스크랩] [경기도 남양주] 원주변씨 시조 대은 변안렬(大隱 邊安烈) 묘역

장안봉(微山) 2013. 5. 11. 09:34

원주변씨(原州邊氏)

 

원주(原州)는 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 또는 치악성(雉岳城)인데,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북원경(北原京)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원주(原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군으로 바꾸어 열월군과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단산현·영춘현·주천현·황려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큰 군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에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260년(원종 1)에 원주군으로 복구되었다. 1269년(원종 10)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강등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원주목을 유지했으며, 강원도의 관찰사영이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1683년(숙종 9)과 1728년(영조 4)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를 실시함에 따라 강원도의 감영이 폐지되고 충주부 소속의 원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도제 실시로 강원도 원주군이 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原州市)로 승격되고 나머지는 원성군(原城郡)이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다시 원주군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원주군이 원주시에 통합되었다.

 

《원주변씨족보(原州邊氏族譜)》에 의하면 중국 송(宋)나라 말에 고려 황주(黃州)에 귀화한 변요(邊幺)의 아들 변여(邊呂)가 태천백(泰川伯)에 봉해졌다. 그의 현손 변순(邊順)은 1268년(원종 9) 사신 탈타아(脫朶兒)를 수행하여 원(元)나라에 가서 심양(瀋陽)의 장수로 있다가 천호후(千戶侯)에 봉작을 받았다. 그의 손자 변안렬(邊安烈)은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귀국하여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을 격퇴시켜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판소부감사(判小府監事)에 올랐으며 이듬해 경도(京都)를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워 추성보조일등공신(推誠輔祚一等功臣)에 책록되고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다. 1376년(우왕 2)에는 추충양절선위익찬보조공신(推忠亮節宣威翊贊輔祚功臣)로서 이성계(李成桂), 유실(柳實) 등과 함께 운봉(雲峰), 부령(扶寧) 등지에서 왜구를 크게 소탕하여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으며, 한방언(韓邦彦)과 함께 단양(丹陽)과 안동(安東)에 침입해 온 왜구를 격퇴시켜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으로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으나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제거하고 쫓겨난 우왕(禑王)을 복위 시키려다가 김저(金佇)와 함께 죽었다. 그는 공민왕의 인척인 원주원씨(原州元氏)의 딸과 혼인하여 원주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원주(原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원주변씨는 황주변씨(黃州邊씨)의 시조 변여(邊呂)의 후손이어서 황주변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별좌공파(別坐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첨추공파(僉樞公派), 남부령공파(南部令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부마공파(駙馬公派), 사용공파(司勇公派),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로 나뉘어졌다.

 

 

 

 묘표비각(좌)과 신도비 박정희대통령고유기념비(우)

 

 

대은변안렬 신도비각

 

 

원천부원군대은변안렬신도비박정희대통령고유기념비

 

 

 불굴가비

 

 

 

 

 묘표비각과 묘소전경

 

 묘표비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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