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기도)

[스크랩] [경기도 남양주] 조선 11대왕 중종의 후궁 경빈박씨(敬嬪朴氏)와 복성군(福城君) 묘

장안봉(微山) 2013. 5. 11. 09:33

경빈박씨(敬嬪朴氏)

 

?∼1533(중종 28).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후비.

 

본관은 밀양. 중종반정을 주도한 정국공신(靖國功臣) 박원종(순천박씨)의 수양딸로, 친아버지는 경상도 상주 지방의 사족 출신인 박수림(朴秀林)이다. 연산군 재위 시절에 흥청으로 선발되어 궁에서 지내다가 중종의 눈에 들었고,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수양딸이 되어 왕으로 즉위한 중종의 정식 후궁이 되었다.
1509년(중종 4)에 왕자 복성군 미(福城君 嵋)를 낳았고, 그뒤 혜순옹주(惠順翁主)와 혜정옹주(惠靜翁主)를 낳아 왕의 총애를 받았다.

1527년에 효혜공주(孝惠公主)의 남편인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가 아버지 안로의 사주를 받아, 왕세자(후의 인종)를 저주하기 위하여 꾸민 작서(灼鼠)의 변에 연루되어, 1528년(중종 23) 복성군과 함께 폐출되어 곧 사사되었다가 뒤에 신원되었다.

 

 

중종왕자 복성군(福城君)

 

?∼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왕자.

 

이름은 미(嵋). 아버지는 중종이며, 어머니는 경빈박씨(敬嬪朴氏)이다. 부인은 현감 윤인범(尹仁範)의 딸이다. 윤비가 세자(世子 : 仁宗)를 낳고 죽은 뒤 경빈박씨는 아들을 세자로 책봉시키려는 야망을 가졌다.

마침 1527년(중종 22) 세자의 생일에 쥐를 잡아 사지와 꼬리를 자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져서 동궁(東宮)의 북정(北庭) 은행나무에 걸어 세자를 저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경빈박씨가 혐의를 받아 작호(爵號)를 빼앗기고 서인(庶人)으로 되어 귀양갔다가 1533년 모자가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1541년(중종 36)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희(禧)가 사건을 조작한 진범으로 밝혀져 신원(伸寃 :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복성군묘(전)와 경빈박씨묘(후)

 중종후궁 경빈박씨묘 전경

 

 

 

 경빈밀양박씨지묘(敬嬪密陽朴氏之墓)

 묘표후면

 

 

 

 

 

 

 

 묘 후경

 경빈박씨의 아들 중종왕자 복성군 묘 전경

 

 

 

 

 

 복성군지묘(福城君之墓)

 

묘표후면

 묘표후면 : 가정이십육년정월장우양주...(嘉靖二十六年正月葬于楊州...)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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