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이색선생 덕산 루산영당을 찾아서
나는 15년 전, 목은 이색선생의 영정을 모신 충남 예산에 있는 덕산 루산영당(현 삽교읍 2리 389 소
재)을 둘러본 일이 있다. 그 때는 허술하고 지금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크게 감명을 ?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왜 목은 이색선생의 영당이 이곳에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안고 돌아 왔다.
그런데 지난 달 서천 문헌서원을 다녀와서 루산영당에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차제에 지금은 어
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여 방문을 하게 되었다. 예산읍을 지나 덕산쪽을 향하여 달리다 삽교를 통과하여
얼마 안가니 길 옆에 아무 초라하게 생긴 "목은 이색선생영당"이란 간판이 눈에 띠었는데, 그 밑에 있는
"장모님 김치"간판과도 비교가 되고 잘못했으면 그냥 통과 할 번 했다. 영당이 가까이 있는 동네에 삼거
리에 이르러서도 안내간판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 표시가 없어 차를 세워놓고 한동안 사람들을
찾아 물어물어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보나마나 지금도 예전과 별 다름이 없겠구나 생각했는
데 막상 현지에 도착해 보니 루산영당은 완전히 일신하여 보기에 너무 좋았다. 역시 와보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충문(文忠門)
아름답게 새로 단장된 단청이 푸른 향나무 거목과 어울려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목은선생 영당 연혁
* 다음은 문충문(文忠門) 오른쪽 앞에 세워진 "목은선생영당 연혁" 비 뒤에 새겨 놓은 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한문으로 어렵게 되어 있는 부분은 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풀어 놓았다.
선생의 성은 이씨요, 관은 한산이며 휘(諱)는 색(穡) 자(字)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이시며 고려 찬성사(贊成事) 문효공 가정(文孝公 稼亭)선생, 휘 곡(穀)의 아드님이시다. 1328년 경북 영덕에서 탄생하시어 14세 때 성균시 십운과(成均試 十韻科)에 등과하시어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셨다. 1396년 5월 7일 여주에서 천수를 누리시지 못하고 69세로 서거하셨다.
선생께서는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분으로 절의가 숭고하시고, 도학과 문장이 고명하시매 한산 문헌(韓山 文獻), 청주 화항(淸州 화港), 장단 봉금(長湍 鳳岑 ), 평산 동양(平山 東陽), 영해 단산(寧海 丹山), 공주 동학(公州 東鶴), 장흥 납양(長興 南陽), 하동 금남(河東 錦南), 여주 매산(驪州 梅山), 안동 서산(安東 西山)서원 등에서 향사되시고 있다.
선생의 영정은 고려시대 조정에 들어갈 때 입는 홍포대병대지상(紅布屛帶之像)과 집에서 기거 할 때 입는 초립지상(草笠之像) 2종이 전래되어 오다가 백의야복(白衣野服)은 임진왜란 때 실전되고 홍포대병대지상(紅布屛帶) 영정은 국가보물 (1215-3호)로 지정되었다. 1520년 5대손 좌의정 유청(惟淸)이 화상에게
2본을 모사토록하여 하나는 본인이 모시고 현손 한원군 장윤(韓原君 長潤)이 봉안 하였다가 1592년 임진병화 때 7대손이며 한원군(韓原君)의 증손인 아주군 식(鵝洲君, 埴)이 이곳 덕산(德山)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다.
1600년 한음 이덕형과 오성 이항복 두 사람의 소청에 의하여 선조대왕이 윤허하여 8대손 (한양군 흥준)이 덕산 루산2리(삽교 이리)에 영당을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1654년에 2 본을 모사하여 구 영정은 한산 문헌서원에 옮겨 모시고, 하나는 덕산 루산영당(樓山影堂)과 다른 하나는 서울 수송영당(壽松影堂)에 봉안하고 제자손이 춘추로 정례적으로 향사(享祀)한다.
본 영당은 수백년 내 수차 중수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파손이 심하여 1993년 예산군 화수회에서 경향각지의 일가들의 협찬을 받아 영당 전동을 새로운 기와로 올리고 단청도 선명하게 하였고, 그 후 2004년 봉화공(韓原君)파종회에서 담장을 개축하고 영당 주변 전체를 일절 새롭게 중수하였다. 앞으로 천추만대에 영구보존이 되도록 제자손이 수호에 성심을 다해주기 바라는 바이다.
2004. 10. .
22대손 신원(信遠) 씀
한성군파종회 근수(謹竪)
영당 앞의 보호수
영당 앞에는 보호수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수령은 528년, 수고 11m, 나무둘레 3.0m이며 지정일
자는 1982년 10월 15일 이라고 되어 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안내판을 매년 바꾸는 것이 아니므로
나무의 나이나 크기가 실제와 비교하여 정확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향나무가 그만큼 크고 명품이
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잘 정돈된 경내
경향각지의 일가들의 협찬을 받아 영당 전동을 새로운 기와로 올리고 단청도 선명하게 하였으며, 담
장을 개축하고 영당 주변 전체를 새롭게 중수하여 보기가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정원
향나무 밑과 영당 주위에는 맹문동 꽃이 활짝피어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목은 선생 영당 편액
서천 한산에 문헌서원에 있는 원본 영정도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을 옮겨 갔다는 사실
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목은 선생 전신 영정
원래 구조상 반신상만 위로 노출되어 있고 하반신상은 평소에 가려 있으나 특별히 요청하여
전신을 촬영할 수 있었다. 뒤 판이 평평하지 못해 사진이 일자로 바르게 찍히지 않았다.
보호수 향나무
두 그루의 보호수인 거목 향나무는 전체를 찍어도 아름답지만 부분적으로 보아도 너무 아름답
고 예술적이고, 또는 괴이하게 생긴 면이 많아 여러 커트 찍었다. 그늘이 많이진 나무 밑에서
찍은 사진은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안내를 맡아 준 이효원 선생과 함께
영당 전면이서 본 전경
영당 오른쪽 뒷편에서 바라본 모습
영당 왼쪽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 영당 뒤 정원의 풍경-
영당 담장 밖의 넓은 땅도 한산이씨 종중 땅이라고 하는데
고목 노송 등이 어울려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 일부를 찍어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올린다.
[후기]
나는 전국 어디를 가던지 문화재 안내 간판이 보이면 시간적으로 너무 급하지 않을 때는 잠간이라도
들려보는 생활을 해 오고 있다. 그건 나에게 있어서는 안목을 넓이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에는 여러 성씨들의 조상에 대한 글과 사진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번에 한산의 문헌서원,
원남 이상재선생 생가, 한산이씨 시조 묘, 이하복선생 고택 등을 소개했을 때 보여 준 한산이씨의 반
응에 대하여 큰 감명을 받았다. 다른 성씨에 비하여 조상의 유덕을 기리는 정신과 일가간의 연대감이
유남히 강하다는 사실을 실감 하게 된 것이다. 훌륭한 조상을 둔 후손 답다는 생각이 든다. 날로 경천
숭조사상이 희박해져 가는 세상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고, 새롭게 깨닫는 바 크다.
[찾아가는길]
삽교를 지나 얼마 안가면 왼쪽 굴 속으로 통과하여 이동으로 들어가는 안
내판이 보인다.(장모님 김치 간판위 흰 간판)
수촌리 3거리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진입해야 한다. 반드시 안내판이 있어야할 자리에
안내 표지판이 없어 고생한 자리이니 찾아 가실 분은 꼭 참고 하시길 바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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