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선조 )

[스크랩]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장안봉(微山) 2012. 12. 1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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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문화재 탐방<8>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2006년 10월 27일 (금) 00:00:00 편집국 기자 newssc@newssc.co.kr

   
· 문헌서원
· 가정목은선생문집판
· 이색영정
· 이색신도비
· 이색선생묘일원

역사상 두드러진 업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많이 있다. 우리 고장에도 훌륭한 많은 위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목은 이색(牧隱 李穡)은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곡(李穀)은 1298년(고려 충렬왕 24년) 한산에서 태어나 1351년(충정왕 3년) 생을 마친 고려 말기의 학자로서 호는 가정(稼亭)이고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의 6대손으로 이색의 아버지이다.

1317년(충숙왕 4년)에 거자과(擧子科)에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는 1320년 문과에 급제하고 다시 1333년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당시 원나라가 고려로부터 처녀를 징발하는 공녀제(貢女制)를 폐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34년(충숙왕 3년) 고려의 학교를 진흥시키기 위해 고려에 돌아왔고 그 일을 마친 후 가정은 원나라로 돌아가 고려를 위하여 많은 일을 했다.

이색(李穡, 1328-1396년)은 호는 목은(牧隱)이며, 외가인 영해(지금의 경북 영일지방)에서 출생하였다. 이색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성리학자로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가 망할 때 태조 이성계에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1997년 8월 중국 북경에서 한국목은연구회와 중국인민대학 동방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목은이색사상한중학술대회’에서 북경대학 철학계 교수이며 중화공자학회 회장인 장대년(張岱年)은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색은 한국 14세기(고려말기) 때의 유명한 학자이다.

그는 시인이며 교육가일 뿐 아니라 창조적 정신과 변증법적 사유를 지닌 철학가이다. 이색은 일찍이 부친을 따라 원나라의 국자감에서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중략) 귀국 후 그는 조선의 구체적 국정(國情)과 결합시켜 중국의 성리학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조선 성리학의 시조가 되었다. (중략) 그는 성리학의 주지를 널리 전파하고 조선 성리학의 사상체계를 수립하는 데 이론적 기초를 닦아 놓았다.

이색은 조선 학술사에서뿐 아니라 동방 유학사에서도 빛나는 진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 국민의 자랑인 동시에 중국 인민의 긍지이다.”라고 하면서 “이 귀중한 역사 문화유산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 기산면 영모리 소재 문헌서원
문헌서원(文獻書院)

문헌서원은 문화재자료 제125호(서천군)로서 기산면 영모리에 위치하며,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27년(1594년)에 세운 서원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광해군 2년(1610)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고 이듬해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인재 이종학, 음애 이자, 백옥헌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고종 8년(1871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문양공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 문화관광해설사 윤미순이 가정목은선생문집판을 보이고 있다
가정목은선생문집판(稼亭牧隱先生文集板)

가정목은선생문집판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77호(서천군)로서 기산면 영모리 312에 소재하며,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문집인 가정집(稼亭集)과 목은집(牧隱集)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판목이다. 현존 판목은 975매로 문헌서원 장판각에 보존되어 있다.

가정집은 20권 4책. 초간본은 1364년 아들 이색(李穡)이 편집하고 사위 박상충(朴尙衷)이 간행하였으나 병화로 없어지고, 1422년 후손 이종선(李種善)이 중간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판본이 소실되자 후손 기조(其祚)가 1635년 대구에서 세번째로 중간하였으며, 지금 전해지는 책은 1662년에 후손 태연(泰淵)이 전주에서 20권 4책으로 중간한 것이다.

목은집은 이색의 셋째 아들인 이종선이 수집·편찬하여 1404년(태종4년)에 70권으로 간행하였으나 일부가 불타 없어져 55권으로 줄었다. 현재의 판본은 1626년(인조4년)에 8대손 이덕수가 유고를 추가로 수집하여 다시 간행한 것이다.

   
▲ 목은 이색 영정








이색영정(李穀影幀)

이색영정은 보물 제1215호로 목은 이색의 초상화이다. 이색의 초상화는 원래 관복차림과 평상복차림의 두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복차림만 전해진다. 관복차림의 그림도 원본은 전하지 않고 원본을 보고 옮겨 그린 것으로 모두 4본 5점이 전해진다. 누산영당본, 영모영당본, 대전영당본, 목은영당(대본), 목은영당(소본)이 그것이다. 사진은 영모영당본이다.



   
▲ 도지정문화재자료 제127호 이색신도비







이색신도비(李穀神道碑)

이색신도비는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27호로 기산면 영모리 18번지에 소재한다.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업적을 비석에 기록하여 묘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다. 이 신도비는 조선 세종 15년(1433년)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에는 “선생은 후에 득죄하고 폐출되었으나 천지만이 선생의 고결한 심사를 알리라”는 것이 기록되었다.


   
▲ 이색 선생 묘 전경
이색선생묘일원(李穀先生墓一圓)

이색선생묘일원은 충청남도기념물 제89호로 기산면 영모리 산1-1에 위치하며, 묘소는 문헌서원의 좌측 기린산(麒麟山) 중턱에 있는데 묘의 자리는 무학대사가 정한 것이라고 한다. 무덤의 형태는 원형이며, 무덤 앞에는 망주석, 문인상, 마상(馬像)이 각각 2기씩 양쪽에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 비석이 서있다. 비는 단순한 형태이며 앞면에 ‘牧隱先生李穡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출처 : 하늘행복
글쓴이 : 하늘감사(天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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