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충청도)

[스크랩] 원통산(圓通山) 구절터(김생암)에서

장안봉(微山) 2013. 4. 14. 13:36

원통산(圓通山)이 억울하여 한이 맺혀 우는 원통산(怨慟山)으로 불리우는 것은

세상만사 모든 일이 부처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 부처님 대신 원통산에 회자되는 것은 아닐까 ?

 

충주시 노은면과 음성군 감곡면에 걸쳐있는 원통산 구절터을 답사하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제 가면 언제 오나."하는 상여소리이다.  원통이란 어감 때문일까 ?  아니면 원통산 또는 원통골의

지명유래 때문일까 ?  무엇이 그렇게 원통하길래 원통산 원통골이 되었을까 ? 흔히들 최전방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하는 소리가 "인제 가면 언제 오나."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 인제군의 원통리는 원통역(圓通驛)에서 유래한다. 또한 원통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미륵천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명유래를 고찰하다가보면 잘못 와전된 것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인제군 원통리의 유래와 같이 노은면의 원통골과 원통산도 잘못 와전된 이야기가 회자되어

채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통산은 원통산(圓通山), 원통산(遠通山), 원통산(怨慟山) 등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원통하다에서 원통은 원통(怨慟 : 억울하여 울다)보다는 원통(寃痛 : 분하고 억울하다.)으로

표기하는 것이지만 이는 지명유래를 채록하는 과정의 오류로 추정된다. 원통산의 유래는 인접한

보현산,가섭산,두타산 등처럼  관세음보살인 원통(圓通)이란 뜻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구절터에 있었다가 일제 감점기에 옮긴 절인 관음사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과 같은 곳이다.

원통산(圓通山)이 원통산(怨慟山)으로 변한 것은 다른 지역사람들이 그를 비하하는 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 한다.

 

국어사전에서

원통 []

[불교] 지혜로써 진여() 이치 깨달음. 또는 이치.

본질 원만하여 널리 모든 존재 두루 통하고 작용

자재()하여 거리낌 없이 모든 존재 작용한다.

원통 []

분하고 억울함.

[怨]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원망과 한이 응어리진 마음.

 

이번 원통산 구절터 답사는 원통산의 지명유래보다는 신라시대의 명필인 김생의 일화가 전해지는

김생암(김생사지)을 조사하기 위하여 다녀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주목 불우조에는 "김생사는

북진 언덕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김생편에서는 그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질 않는다. 김생사는 김생이 두타행을 닦고 김생사에서 머무른데서 유래한 것이다.

불교에서 두타행이란 출가한 수행자가 세속의 모든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고행을 하는

행방법의 하나인데,12두타행은 "① 속세와 떨어진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在阿蘭若處),

② 왕이나 신도들의 공양을 따로 받지 않고서 항상 걸식만 하는 것(常行乞食), ③ 하루에

일곱 집만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찾아가 걸식을 하며, 만일 음식을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굶는 것(次第乞食), ④ 하루에 한자리에서 한번만 식사하는 것(受一食法),

⑤ 바루에 담긴 음식만으로 배고픔을 면할 정도만 먹는 것(節量食), ⑥ 정오가 지나면 음료

등도 마시지 않는 것(中後不得飮漿), ⑦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분소의(糞掃衣)만 걸치는 것

(着弊衲衣), ⑧ 삼의(三衣)만 입는 것(但三衣), ⑨ 무덤에서 머무는 것(塚間住), ⑩ 나무

밑에서만 쉬는 것(樹下止), ⑪ 노천에서만 앉는 것(露地座), ⑫ 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

(但座不臥)"이다.

 

두타행을 가장 잘 수행한 보살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가섭존자(迦葉尊者)로 알려져

있다.  김생이 김생사에 머무르기 전에 두타행을 닦으며 고행하며 다닌 곳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원통산의 구절터(김생암)는 급경사에 위치하여 작은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작은 암굴이 있는데,  암굴은 산행 중에 2~3명이 비박을 할 수 있는 크기이며  암벽 아레에

옹달샘과 같이 있어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는 곳이다. 또한, 원통산은

국망산과 보련산보다 작은 산이라 사방을 둘러볼 수는 없지만, 정상에서는 노송과 어울어진

바위에 누워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중앙탑과 탄금대는 물론이고 충주시까지 조망할 수 있다.

 

원통산을 하산하면서 수도승처럼 12두타행은 아닐지라도 원통산 구절터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1박 2일" 동안 비박을  하고픈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산을 오를 때에는 산이 좋아서 오른다고

하지만, 산을 내려갈때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 뿐이다.  중도 절도 떠난 빈 절터에서 내려오며

깨달음이 아니라 김생사지라는 잡념만 머리 속에 더 넣은 것같아 발길이 무겁다.

 

 

 

 

 

원통골에서 바라본 원통산

 

질마재 계곡의 사방댐

 

원통산 정상

 

원통산 정상의 소나무

 

원통산 정상에서 바라본 원통골 저수지(대덕지)

 

원통산 정상에서 바라본 국망산

 

원통산 정상 부근의 구절터 이정표

 

원통산 구절터

 

원통산 구절터

 

원통산 구절터 광배 받침바위

 

원통산 구절터 광배 받침바위

 

원통산 구절터 광배바위

 

원통산 구절터 광배바위

 

원통산 구절터 광배바위

 

 원통산 구절터 약수

 

원통산 구절터 약수

 

원통산 구절터 암굴입구

 

원통산 구절터 암굴입구

 

원통산 구절터 암굴 내부 천정

 

원통산 구절터 암굴

 

원통산 질마재

 

승대산

 

둔터고개

 

중부내륙고속도로(중원터널입구)

 

[참고자료]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주목 불우조에서

김생사(金生寺) 북진(北津) 언덕에 있다. 김생(金生)은 신라 사람인데, 부모가 미천하여 그 세계(世系)는 알지 못한다. 경운(景雲) 2년(711)에 났다.(중략) 김생이 두타행(頭陀行)을 닦고 이 절에 있었으므로 인하여 이름을 삼았다.

 

김생암지(디지털음성문화대전)

  • [정의]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 김생이 글씨 연습을 했다고 전해지는 불교 암자의 터.

  • [개설]
  • 김생암지원통산 서쪽 기슭에 있는 폐사지로, 김생암이 있었던 터이다. 김생은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능하였으며,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다. 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 [변천]
  • 김생암은 일제강점기 때까지 있었던 작은 암자로서, 1962년에 김생암지 아래로 절을 옮기고 금강암(金剛庵)이라 하였다. 1994년 법당을 새로 건립하고 주변의 사역(寺域)을 넓히는 불사(佛事)를 일으킨 후에 절의 이름을 관음사(觀音寺)라고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현황]
  • 김생암은 고문헌 기록에 나오지 않아 유래는 알 수 없고, 단 일제강점기 때 간행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김생암감곡면 원통산 아래에 있다. 김생은 신라 때의 중으로 이곳에서 글씨쓰는 연습을 하였다. 나뭇잎을 따서 먹으로 쓰면 계곡을 채우며 내려갔는데 아래쪽 물이 검어졌다(金生庵在甘谷面圓通山下 金生新羅時僧 習筆於此 摘葉墨書 塞溪而下 水篤之黑)'라고 기록되어 있어 김생암감곡면(甘谷面) 원통산(圓通山) 아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의의와 평가]
  • 김생암「사찰조(寺刹條)」에서 기록하지 않고 「고적조(古蹟條)」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는 김생암 자체보다는 통일신라의 명필인 김생이 나뭇잎을 따서 글씨 연습을 함에 따라 계곡물이 막히고, 아래쪽 물이 검게 되었다는 전설에 더욱 비중을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덕리(디지털충주문화대전)

  • [정의]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 [명칭유래]
  • 마을 뒤에 있는 행덕산(行德山)[447.7m]의 이름과 같이 덕(德)을 크게 행한 마을이라 하여 대덕리(大德里)라 하였다.

  • [형성 및 변천]
  • 대덕리차령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일찍이 전주이씨, 문화유씨, 광산김씨가 들어와 살았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충원현 고장박리(古莊朴里)였고, 1898년 편찬한 『충청북도각군읍지(忠淸北道各郡邑誌)』 충주조(忠州條)에는 대덕리라 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안락리대덕3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 [자연환경]
  • 대덕리 마을 동쪽은 승대산, 서쪽은 행덕산, 북쪽은 원통산(怨慟山)[652m]이 둘러싸고 있으며, 이곳에서 발원한 원곡천(怨谷川)대덕2리 호장골 앞 평야지대를 지나 한포천으로 흘러든다. 산에 소나무, 참나무, 닥나무, 진달래, 철쭉 등이 무성하였으나 6·25 이후 마구잡이 벌목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인제군 북면(원통)의 지명유래(인제군청)

    북면

    군(郡)의 북쪽에 위치(位置)하고 있어 북면(北面)이라 하였으며, 본래 원통(元通), 가역리(加歷里), 용대리(龍垈里), 남교역(嵐校驛), 온정(溫井), 송학동(松鶴洞), 한계동(寒溪洞), 풍전동(楓田洞)의 9개 리(里)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에 따라 한계(寒溪), 원통(元通), 월학(月鶴), 용대(龍垈)의 4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원통리

    조선시대에 원통역(圓通驛)이 있었으므로 원통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어두리(魚頭里)와 하동(下洞)일부를 병합하여 원통리(元通里)라 하였다. 행정리는 8개리다.

     

     

    노은면 대덕리(大德里) 지명유래

    .
    ●원통-골1[원통(遠通)]【마을】대덕리의 주가 되는 마을로 호장골 북쪽 원통산 밑에 있는 마을. 이 부근에 고려장터가 많았다고 함. 상원곡, 중담, 하원곡을 통털어 말함.
    ●제당-터【터】속칭 제당산에는 치마바위, 병풍바위 등의 명물이 많고 산중에 일제때까지 제당에서 고사를 드렸다고 함.
    ●질마-재【고개】대덕리에서 원통산을 넘어 감곡면 쪽으로 가는 고개가 하나. 승대산 넘어 앙성면 쪽으로 가는 고개가 둘, 이 모두를 질마재라 부르는데 고개마루가 질마같이 생겼다 함.

    ●원통-산(遠通山, 怨慟山)【산】음성군 감곡면, 충주시 앙성면에 접경하는 산. 높이 650m.
    ●행덕-산(行德山)【산】음성군 감곡면의 접경에 위치하는 산. 높이 448m.

    출처 : 산골어부의 남한강 이야기
    글쓴이 : 산골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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