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선조 )

[스크랩] [안동]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 종택과 고산서원

장안봉(微山) 2012. 12. 16. 20:58

[대산 이상정]

본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 고조부는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증조부는 이효제(李孝濟), 할아버지는 이석관(李碩觀),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딸이다. 고조부 이홍조광해군 때 외조부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있는 안동으로 피신해 오면서 그 후손들이 안동에 세거하게 되었다.
이상정은 1711년 1월 29일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태어났다. 남달리 총명해서 5세 때 글자를 배웠는데 이때 벌써 편방(偏傍)과 점획(點劃)을 다 알고 구별했다고 한다. 6세 때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그 슬퍼하는 모습이 마치 어른 같았다고 한다.
윤리에 독실하여 자제로서의 도리를 다하며 혹시라도 어기는 일이 없었고, 동년배들에 대해서도 낯빛을 바꾸거나 모진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또 율려(律呂: 음악), 역법(曆法), 산수(算數)에 모두 통달했으며, 선기옥형(璇璣玉衡: 혼천의), 심의(深衣), 상복(喪服) 등의 제도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고도 바로 손 가는 대로 만들어 내어 늘 스승인 이재의 칭찬을 받았다.
1735년(영조 11)에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 전적, 병조정랑, 사간원정언, 사헌부감찰, 병조참지, 예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외관직으로는 연일현감, 강령현감(康翎縣監) 등을 지냈다. 이상정의 치적으로는 1753년(영조 29) 연일현감 재임시, 연일은 풍속이 교화되지 않아 현민이 소송을 일삼아 다스리기 어려운 지역이었으나 이상정의 노력으로 한 때라도 아이와 여자들이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
또 연일현감 부임 당시 연일은 날이 가물어 민심이 어지러웠으나 부임하자마자 비가 내려 현민들이 그 비를 사군우(使君雨)라 불렀다 한다. 1780년(정조 4) 병조의 낭관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자 다시 예조참의에 제수되었고, 이듬해에는 형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나이와 병을 이유로 상소를 올려 사양하였다. 1781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상정은 퇴계학맥의 중요한 계승자인 이재(李栽)의 외손으로 일찍부터 그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여 이황(李滉)-이현일(李玄逸)-이재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남한조(南漢朝), 김종덕(金宗德), 류장원(柳長源) 등에게 전수하였다

1816년(순조 16) 이조참판에, 1882년(고종 19)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910년 문경(文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