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덕여왕 [眞德女王, ?~654]
휘(諱)는 승만(勝曼)이고, 진평왕(眞平王)의 모제(母弟)인 갈문왕 국반(國飯)의 딸이며 어머니는 월명부인(月明夫人) 박씨(朴氏)이다. 선덕여왕이 재위하던 647년에 비담(毗曇)이 반란을 일으켜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이 이를 진압하였으나,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여 연호를 태화(太和)라 하였으며, 반란 주모자인 비담을 비롯한 30명을 처형하였다.
즉위한 뒤 고구려와 백제가 계속 도발하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백제와 대적하게 하는 한편,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를 중국 당(唐)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요청하여 나당동맹(羅唐同盟)을 맺었다. 649년 당나라를 본떠 복제(服制)를 개편하였고, 650년에는 법민(法敏)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여왕이 친히 지은 《태평송(太平頌)》을 바치고 당나라 연호인 영휘(永徽)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652년 김춘추의 둘째아들 인문(仁問)을 당나라에 보내어 친교를 더욱 돈독하게 하였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력을 튼튼히 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왕이 죽은 뒤 사량부(沙梁部;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에 묻혔는데, 당 고종(高宗)은 비단 300필과 함께 사신을 파견하여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였다.
즉위한 뒤 고구려와 백제가 계속 도발하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백제와 대적하게 하는 한편,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를 중국 당(唐)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요청하여 나당동맹(羅唐同盟)을 맺었다. 649년 당나라를 본떠 복제(服制)를 개편하였고, 650년에는 법민(法敏)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여왕이 친히 지은 《태평송(太平頌)》을 바치고 당나라 연호인 영휘(永徽)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652년 김춘추의 둘째아들 인문(仁問)을 당나라에 보내어 친교를 더욱 돈독하게 하였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력을 튼튼히 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왕이 죽은 뒤 사량부(沙梁部;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에 묻혔는데, 당 고종(高宗)은 비단 300필과 함께 사신을 파견하여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였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메모 :
'여행이야기(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경북 경주]무열왕릉 (0) | 2012.12.16 |
---|---|
[스크랩] [경북 경주]김유신장군 묘 (0) | 2012.12.16 |
[스크랩] [경북 경주]慶州李氏 시조 알평(謁平) 유허지 (0) | 2012.12.16 |
[스크랩] [경북 경주]선덕여왕릉 (0) | 2012.12.15 |
[스크랩] [경북 경주] 전 홍유후 설총(傳 弘儒侯 薛聰) 묘 (0) | 201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