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백씨(水原白氏)
수원(水原)은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하며, 수성(隋城)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매홀군(買忽郡),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수성군(水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수주(水州)로,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수주목(水州牧)이 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 수원부로 되었다. 1362년(공민왕 11)에는 군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다시 도호부로 고쳤고, 세조 때에는 진(鎭)을 두었으며, 1789년(정조 13)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의 진산인 화산(華山)으로 옮기고, 팔달산 동측으로 수원의 읍치를 이전하였다. 1793년에는 수원을 개성부·강화부·광주부와 같은 지위인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키고, 1794년부터 수원성 축성을 시작하였다. 1796년에 축성을 완료하여 수원은 새로운 성곽도시로 변모했으며, 옛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날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관할의 수원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수원군이 되었다. 1931년 수원면(水原面)이 수원읍(水原邑)으로 승격되었고, 1949년 수원군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나머지 지역은 화성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7년에 경기도청이 옮겨옴에 따라 수원은 명실상부한 경기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988년 구제 실시로 권선구와 장안구를 설치하고, 1993년 팔달구(八達區)를 설치하였다. 1995년 화성군 태안읍 영통리가 팔달구로, 화성군 반월면 당수리·입북리가 권선구로 편입되어 시역이 확장되었다.
백씨의 시조(始祖), 백우경(백宇經)
한국백씨의 시조는 백우경이다. 자는 경천(擎天)이고, 호는 송계(松溪)이며 당(唐)나라 소주(蘇州)사람이다. 중국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이며 당나라 시성(詩聖) 백낙천(白樂天)과 사촌간이다. 인품이 고결하고 학문이 뛰어나 당나라 첨의사이부상서(僉議事吏部尙書)에 올랐으나 간신배들의 모함을 당하자 서기 780년 신라선덕왕 원년에 당나라를 떠나 신라에 오신 후 대상( 大相)의 벼슬에 오르셨으며 만년에 계림 자옥산(鷄林紫玉山 : 현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기슭에 영월당(迎月堂)과 만세암(萬歲庵)과 13층 석탑을 짓고 신라의 발전에 이바지 하셨다. 어느날 선덕왕이 이곳에 몸소 찾아와 영월당 현판에 경춘(景春)이라 쓰고 만세암을 정혜사로 고쳐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정혜사의 불당은 없어지고 13층 석탑만이 남아 국보 40호로 지정되어 보존 되고 있다. 동경통지(東京通誌) 제 7권 불사편(佛寺篇)의 아래와 같은 기록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淨惠寺惠址 在紫玉 山下 新羅宣德王庚申 唐朝僉議事白宇經 被讒來寓干紫玉山下 建迎月唐萬歲庵 宣德王幸行 改庵爲淨惠寺爲景春 云云」 송계공께서는 당나라 황제가 여러 차례 돌아오라고 간청하였으나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서 사시다가 영월당에서 일생을 마치셨는데 향년 73세였다. 묘는 자옥산 남쪽에 있다고 하나 찾지 못하고 있다가 1959년 우리 일가들이 추심운동을 전개하여 10여 년 만에 자옥산 남쪽 기슭 경좌갑향에 있는 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여 1966년 11월 10일에 사초개봉하였으며 1968년 음력 4월 8일에 첫 제향을 지내고 옥산세사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원백씨종친회 홈페이지 인용]
수원백씨 시조 백우경 묘소 전경
재실 옥산세사
'여행이야기(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경남 합천] 군위방씨 시조 방적(方迪) 제단과 방유녕[方有寧] 묘역 (0) | 2012.12.15 |
---|---|
[스크랩] ?[경북 영천] 영천이씨(永川李氏) 시조 이문한(李文漢) 단소 (0) | 2012.12.15 |
[스크랩] 경북답산 (충청도온달) (0) | 2012.12.15 |
[스크랩] 경북 구미 야은 길재 선생 천년집 답산 (0) | 2012.12.15 |
[스크랩] 의암고택 (0) | 201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