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 고택(故宅)...최영장군과 맹사성이 살던... 가장 오래 된 살림집이다.
이 집은 1330년 (고려 충숙왕17)에 최영장군의 아버지 최원직(崔元直)이 지은 집이다.최영장군은 아산에 있는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長成하여 개성으로 벼슬길에 올라 유명한 장군이 되었다. 최영장군의 아버지 최원직은 아들에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가르치며 엄격히 키운다.
최영장군과 고불(古佛), 맹사성은 이 곳에서 아래 윗집으로 같이 살았다. 古佛이 어렸을 때, 어느 날 최영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꾼다. 집 앞에 있는 배나무위에서 龍이 용트림하며 승천하려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 마당으로 나온 최영은 배나무 위에서 놀며 배를 따고 있는 어린 맹사성을 발견한다. 최영은 " 뉘집 자식인고? " 맹사성은 조용히 부친의 함자를 대고 정중하게 사과하고 물러났다.
그 아이의 부친 이름은 맹희도(孟希道)...얼마 전 科擧에 급제하여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찾아간 최영은 꿈이야기를 하며 맹씨 집안과의 인연을 만들어 간다. 후일 맹사성은 후일 최영장군의 손녀 사위가 되는데, 벼슬을 살 때에 또는 末年에 이 곳 은행나무 밑에서 후학들을 가르키며 지낸다.
지금 이 집은 맹사성의 21대손 맹건식이 살고 있으며, 그의 부인은 성삼문의 후손이다
이 계단을 올라 가면 최영장군이 태어나고, 맹사성이 살았던 故宅이 나타난다.
700년 가까이 된...가장 오래 된 살림집이다. 원형 그대로... 벽만 보수하였을 뿐..
청백리 (靑白吏)란?
관직 수행능력과 청렴, 도덕, 경효(敬孝) 그리고 인의(仁義)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임금의 재가를 얻어 의정부(議政府)에서 뽑아 관료들에게 주어진 호칭이다.
청백리가 되면 후손들에게 先祖의 음덕을 입어 벼슬길에 나설 수 있는 특권을 주기도 하였으며, 모두 219명이 청백리로 지정되었다.
그 중 친숙한 인물로 맹사성, 황희, 이황, 이현보, 김장생, 이항복 등이 있다. 황희정승이 청백리인가는 여러 다른 이야기가 있고, 그 점에 대하여는 "황희의 묘"에서 자세히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황희는 요즈음의 정치인처럼 적당히 非利를 저지르고, 적당히 때가 묻은 고위관료이었지만, 워낙 환상적인 조합으로 聖君 世宗을 모셨기 때문에 청백리로 모셔진것 같다.
그러나 맹사성은 모든 면에서 청백리의 전형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최영장군이 헛기침하며 걸어 나오는 듯.. 너무 생생하다.
뒷마당의 모습... 굴뚝의 모습이 아름답고 이채롭다.
맹사성이 아홉살때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 가을에 다섯가마니의 은행을 수확한다고. 말년에 여기 은행나무 아래에서 후학을 가르친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 (江湖四時歌)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興)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濁聊溪邊)에 금린어(金鱗魚)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閑暇)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샸다.
강호(江湖)에 녀름이 드니 초당(草堂)에 일이 없다.
유신(有信)한 강파(江波)난 보내나니 바람이로다.
이몸이 서날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샸다.
강호(江湖)에 가알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있다.
소정(小艇)에 그물 시러 홀니 띄어 더져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샸다.
강호(江湖)애 겨월이 드니 눈 기픠 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샸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라는 점에서 국문학사상 의의를 가지는 이 노래는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어..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던 당시의 시조풍이었던 충의사상(忠義思想)이 잘 나타나 있다.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존재하는 조화로움은 구성상의 특징에서 기인한다고 하겠으나, "역(亦)"이란 표현에서 더욱 돋보인다고 하겠다. 亦이란 전에나 다름없이..라는 의미를 간직한 것으로 詩的 自我는 강호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기 전에도 임금이 은혜를 입었슴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은사(隱士)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과, 비록 은둔하여 있으나 임금을 향한 충의(忠義)의 정신을 잊지 않고 있는 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호에 봄이 찾아드니, 참을 수 없는 흥겨움이 솟구친다.
탁주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 제격이구나.
다 믉은 이 몸이 이렇듯 한가롭게 지냄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강호에 여름이 닥치니, 초당에 있는 늙은 몸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신의있는 강 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강바람이다.
이 몸이 이렇듯 서늘하게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강호에 가을이 찾아드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라 있다.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서, 물결따라 흘러가게 배를 띄워 버려두니
다 늙은 이몸이 이렇듯 고기잡이로 세월을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강호에 겨울이 닥치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입어 덧옷을 삼으니
늙은 이 몸이 이렇듯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세덕사(世德祀)...맹사성과 아버지 맹희도 그리고 할아버지 맹유의 위패를 모신 사당(祀堂)이다.
할아버지 맹유는 고려 말의 충신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개성 근처 동두문(東杜門)으로 피신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다.
이성계는 그들을 회유하려 모든 노력을 하였으나 그들의 절개는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이성계는 하루의 말미를 주며 나오기를 권유하면서, 아니면 모두 불질러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 안에 있던 충신들은 상의끝에 가장 나이 어린 황희를 내보내고 그들은 모두 불에 타 분사(焚死)한다.
이들 72명의 충신들을 두문72현(杜門72賢)이라 부르며, 맹사성의 할아버지 맹유도 그렇게 죽는다. 이성계가 아무리 나오라고 회유,협박하여도 끝내 나오지 않았고 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의 유래가 된다.
그 당시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는 서두문(西杜門)에 숨어 있다가, 아들 맹사성을 데리고 충청도 서천을 거쳐 이 곳 최영장군의 집으로 피해 와 은거(隱居)하게 된다.
이미 최영장군 역시 이성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후이었다. 후일 맹희도는 조선 건국이 완료되고, 安定이 되자 아들 맹사성을 불러 벼슬길에 나가도록 권유한다.
英祖가 쓰고, 하사(下賜)한 " 충효세업, 청백가성 (忠孝世業, 淸白家聲) "..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즉 충(忠)과 효(孝)를 대대로 실천하여 왔으며, 청렴과 결백은 가문의 영예이다 ..라는 뜻이다.
기념관 마당 모퉁이에 그야말로 옛날식 화장실... 보기에 참 편하다.
은행나무(행. 杏)이 높은 단(壇)위에 있다 하여 여기를 맹씨행단(孟氏杏壇)이라 부른다. 孔子가 은행나무 위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전례에서 따온 것이다. 돌담위의 이끼...세월의 흔적이다.
구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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