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叙述句,矣字,焉字. 서술문과 矣, 焉 서술문은 ‘동사’를 ‘술어’로 삼아 사람 혹은 사물의 행동 변화를 서술하는 것이다. 고대 한어에서 서술문의 일반적 구조는 현대 중국어와 별 차이가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冬, 晉文公卒 [겨울에 진문공이 죽었다]《左傳·僖公32年》 晉侯秦伯圍鄭 [진후와 진백이 정을 포위한 것은]《左傳•僖公30年》
初, 鄭武公娶於申 [당초 정무공이 신에서 아내를 맞아]《左傳•隱公元年》
齊侯以諸侯之師侵蔡 [제후가 제후의 군대를 거느리고 채를 침범하여]《左傳•僖公4年》
公賜之食 [장공은 그에게 음식을 하사 하였는데]《左傳•隱公元年》
鄭人使我掌其北門之管 [정나라 사람이 나에게 정나라 북문 열쇠를 맡겼습니다]《左傳•僖公32年》
馬逸不能止[말이 내달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左傳•成公2年》
虎求百獸而食之 [호랑이는 온갖 짐승을 잡아 먹는데]《戰國策•楚策1》
위에 제시한 이러한 예문들에서“公賜之食”은 ‘이중목적어’로 된 문장이다. “賜食”은 술목구조로 “食”(食物)은 직접목적어이다. “之”는 영고숙[人名]을 가리키며 “賜食”의 대상이고 간접목적어이다. 이와 비슷한 예문은 다음과 같다.
公語之故, 且告之悔 [장공이 그에게 까닭을 말해 주면서 후회스럽다고 토로했다]《左傳•隱公元年》 多予之重器 [그에게 귀중한 보물을 많이 주면서도]《戰國策•趙策4》
일반적으로 동사가 만약 “賜” “予” “遺” “語” “告” 등의 글자이면 대개 두 개의 목적어를 가진다. 하나는 사물을 지시하는 직접목적어이고, 하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간접목적어이다. 간접목적어는 동사와 직접목적어 사이에 놓인다. 이런 어법은 고대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상고 한어에서 이중 목적어를 가질 수 있는 동사는 결코 위에서 서술한 이러한 종류의 동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타동사도 이중목적어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 [현자를 만나 보고자 하면서 正道로써 만나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들이고자 하면서도 문을 닫는 것과 같습니다]《孟子•萬章 下》 紾兄之臂而奪之食, 則得食﹔不紾, 則不得食﹔則將紾之乎?[형의 팔을 비틀어 그의 음식을 빼앗으면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비틀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면 장차 비틀겠습니까?] 《孟子•告子 下》
天生民而立之君 [하늘이 백성을 내어 그들에게 군주를 세워주고]《左傳•襄公14年》
“閉門”은 ‘술어+목적어구조’로 “門”은 직접목적어이다. “之”는 “현인”을 가리키면서 “閉門”의 대상이고 간접목적어이다. 나머지 예문들도 이와 비슷하다. 일반적인 타동사에서 가장 주의할 만한 것은 동사 ‘爲’이다. 이 단어는 고대에 함의가 매우 광범위하였지만, 구체적인 문장 안에서 그것의 함의도 비교적 구체적이다. 사용되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삼다” “하다” “되다” “다스리다” “처리하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서에서 ‘爲’를 동사로 삼고 뒤에 이중목적어를 두는 문장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不如早爲之所 [그에 대해 일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左傳•隱公元年》 且君嘗爲晉君賜矣 [또 당신께서는 일찍이 진군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左傳•僖公30年》
而爲之簞食與肉, 置諸橐以與之 [그에게 밥과 고기를 만들어 자루 속에 넣어 주었다]《左傳•宣公2年》
重爲之禮而歸之 [ 그(지앵)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고 돌려보냈다]《左傳•成公3年》
吾不忍爲之民也[저는 차마 그의 백성 노릇을 하지 못하겠습니다]《戰國策•趙策3》
君子疾夫舍曰欲之而必爲之辭 [군자는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변명하는 것을 미워하느니라]《論語•季氏》
위의 예문에 대하여 가장 쉽게 발생하는 오해는 위 첫 두 예문의 “爲”자를 전치사(개사)로 보거나 혹은 다섯째 예문 안의 “爲之民”이 “爲其民[그의 백성이 되다]”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인데 이것은 모두 틀린 것이다. 세 번째 예문을 분석하면, “爲簞食與肉”은 술목구조이고, “簞食”와 “肉”은 동사“爲”의 직접 목적어이다. “之”는 영첩(人名)을 가리키고 간접목적어이다. 나머지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또 목적어의 위치에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목적어는 동사 뒤에 놓인다. 그러나 가끔 목적어를 강조하기 위해 목적어를 앞으로 보내고 목적어 뒤에 “是”, “實” 혹은 “之”자를 사용해 다시 지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豈不榖是爲? 先君之好是繼 [어찌 과인을 위해서이겠는가? 선군들께서 맺은 우호를 잇기 위함이다]《左傳•僖公4年》 將虢是滅, 何愛於虞? [장차 괵나라도 멸망시키려 하는데 어찌 우나라를 친애하겠습니까?]《左傳•僖公5年》
鬼神非人實親惟德是依[귀신은 사람을 친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덕을 사랑합니다]《左傳•僖公5年》
姜氏何厭之有? [강씨가 어찌 만족하겠습니까?]《左傳•隱公元年》
商書曰“無偏無黨, 王道蕩蕩”, 其祁奚之謂矣 [상서에 이르길 “치우침이 없으면 임금의 길은 크고 넓을 것이다”고 한 것은 그 기해를 두고 한 말이다]《左傳•襄公3年》
어떤 때에는 또 전치된 목적어 앞에 “惟(唯)”를 사용하여 “惟(唯)……是……” “惟(唯)……之……” 식의 표현법을 구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故周書曰:“皇天無親 惟德是輔” [그러므로《서경•주서》에 말하길, “하늘은 편애함이 없고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을 돕는다.”라고 하였습니다]《左傳•僖公5年》 率師以來,唯敵是求《左傳•宣公12年》[군사를 이끌고 온 것은 대결을 원한 것입니다]《左傳•僖公5年》 父母唯其疾之憂[부모는 오직 자식의 질병을 걱정할 뿐이니라]《論語•爲政》
不務張其義, 齊其信;唯利之求 [그 의로움을 넓히고 신실함을 다스리는 데 힘쓰지 아니하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한다]《荀子•王覇》
현대 중국어에도 “唯你是问[네 책임이다]、“唯利是图[이익만을 꾀하다]”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어법의 잔재이다. 약간 주의해야 할 점은 만약 전치된 목적어가 대명사이면, 일반적으로 “之”를 사용해 다시 지시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我之懷矣, 自詒伊慼”, 其我之謂矣! [“나의 슬픔이여! 내가 이 우환을 자초했구나!”한 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구나]《左傳•宣公2年》 詩曰:“孝子不匱, 永錫爾類”, 其是之謂乎! [《詩經》에 “효자가 끊임없으니, 영원토록 복락을 주시리라”한 것이 이것을 말한 것이구나!]《左傳•隱公元年》
太甲曰:“天作孽猶可違, 自作孽不可活”, 此之謂也 [《書經•太甲》에 이르길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한 것은 그것을 두고 한 말이다]《孟子•公孫丑 上》
魯頌曰:“戎狄是膺, 荆舒是懲” 周公方且膺之, 子是之學, 亦爲不善變矣 [《詩經•魯頌》에 이르길, “융과 적을 응징하고, 형과 서를 징벌한다”고 하여 주공도 오랑캐를 응징하려 했는데, 당신은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으니 또한 잘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오]《孟子•滕文公 上》
이렇게 보면, 고대한어에서 대명사 “是” 혹은 “之”를 이용해서 전치된 목적어를 다시 가리키는 것은 동사-목적어의 순서를 바꾸는 문법 수단이었고, 설령 전치된 목적어 자체가 대명사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법 수단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에는 이러한 어법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을 현대 중국어로 번역할 때, “是”나 “之”를 직접 번역할 필요는 없다. 다음은 상고시대의 한어에서 행위의 수량(動量)을 표현하는 어법을 논하기로 한다. 상고시대 한어에서 動量(*소다 : 횟수가 대표적)을 표현하는 어법은 일반적으로 ‘수사’를 직접 동사 앞에 놓고 ‘양사’를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三進及溜, 而後視之曰 [세번이나 낙수받이에 나아가서야[진 영공은] 그를 쳐다보면서]《左傳•宣公2年》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환공이 여러 번 회맹을 하였으나 무력으로써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느니라]《論語•憲問》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 [우 임금은8년을 밖에 있으면서, 여러 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나쳤지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孟子•滕文公 上》
騏驥一躍, 不能十步;駑馬十駕, 功在不舍 [천리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을 갈 수 없고, 둔한 말도 열 번 끌면 버리지 못할 공이 있나니]《荀子•勸學》
현대 중국어의 動量 표시법은 일반적으로 수사와 양사를 동사 뒤에 놓는 것이다. 예를 들면 “九合”은 현대 중국어에서는 “会合九次”(여기에서 九는 단지 여러 번을 의미하는 것이지 實數는 아니다)이라 하는데 양사(‘次’)를 썼을 뿐만 아니라 어순도 변하였다. 문장성분에서 보면, 고대한어에서 동사 앞에 놓여 동량을 표현하는 수사는 ‘부사어’가 되어 동사를 수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위의 수량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어법을 바꿀 수도 있다. 즉 수사를 동사 앞에서 문장 끝으로 이동시키고 이 수사 앞에 “者”를 넣어 앞의 말과 분리하면 “者” 앞의 말은 전체 문장의 주어가 되고, 문장 끝으로 이동한 수사는 전체 문장의 ‘서술어’가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於是平原君欲封魯仲連, 魯仲連辭讓者三, 終不肯受 [이에 평원군이 노중련에게 봉토를 주려 하자 노중련이 사양한 것이 여러 번이었고 끝내 받지 않았다]《戰國策•趙策3》 范增數目項羽, 擧所佩玉玦以示之者三 [범증이 항왕에게 자주 눈짓을 하여 차고 있던 옥결을 여러 번 들어 보였지만]《史記•項羽本紀》 [玦은 決과 통하므로 옥결을 드는 행위는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동량을 표현하는 수사는 동사 앞 ‘부사어’의 위치에서 전체 문장의 ‘서술어’ 지위로 승격되어 자연히 두드러져서 중요하게 보인다. 현대 중국어와 비교하면, “魯仲連辭讓者三”, “擧所佩玉玦以示之者三”은“魯仲連辭讓了多次”, “把佩带的玉玦举起多次来向他示意”로 번역할 수 있지만 어법구조는 크게 다르다. 위에서 논한 서술문에서 그 문장의 주어는 모두 술어와 동사가 표현하는 행위의 주동 성분이었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와 같이 고대한어의 서술문 주어는 술어와 동사가 표현하는 행위의 피동 성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蔓草猶不可除,况君之寵弟乎? [무성해지면 풀도 오히려 제거될 수가 없거늘 하물며 당신이 사랑하는 아우는 어떠하겠습니까?]《左傳•隱公元年》 君能補過, 袞不廢矣 [당신께서 능히 실수를 고칠 수 있다면 임금의 자리는 보전될 것입니다]《左傳•宣公2年》
諫行言聽[간하면 그대로 따르고 의견을 말하면 들어주어]《孟子•離婁 下》
술어와 동사로 말하면, 위 예문에서 蔓草는 ‘제거 당하는’ 것이고 衮은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의미상의 피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상고시대 한어에서 실제로 피동을 표현하는 어법은 아니다. 선진시대에 진정한 피동문이 차지한 비중은 매우 적었다. 말하는 사람이 피동문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동사 뒤에 “於”를 써서 행위의 주동 성분을 끌어 들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郤克傷於矢, 流血及屨 [극극이 화살에 다쳐 피가 신발까지 흘렀다]《左傳•成公2年》 東敗於齊, 長子死焉; 西喪地於秦七百里; 南辱於楚 [동으로는 제나라에 패하여 장자가 거기서 죽고 서로는 진나라에게 하서의 땅 칠백 리를 잃었으며 남으로는 초나라에게 욕을 당하였습니다]《孟子•梁惠王 上》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치사 “於” 자체가 피동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가 피동의 뜻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於”를 이용해 행위의 주동 성분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피동의 뜻은 더욱 분명해졌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은 고대에 “於”를 사용한 피동문의 어순이 현대 중국어의 어순과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 중국어에서 피동을 나타내는 ‘전치사+목적어’의 “於” 전치사구는 동사 앞에 놓이는 반면(“大樹被風吹倒了”), 고대 한어에서는 동사 뒤에 놓였다(“東敗於齊”). 때로는 “爲”를 이용하여 피동을 표시한다. 父母宗族, 皆爲戮沒 [(장군의) 부모와 일족은 모두 살육 당하고]《戰國策•燕策3》 卒爲天下笑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戰國策•趙策3》
不爲酒困[술로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 것]《論語•子罕》
나중에는 “爲……所” 의 형식도 있었다. 嬴聞如姬父爲人所殺 [제(후영)가 듣기로 여희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史記•魏公子列傳》 先卽制人, 後則爲人所制 [먼저 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 당한다]《史記• 項羽本紀》
征和二年, 衛太子爲江充所敗 [정화2년에 위태자가 강충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漢書•霍光金日磾傳》
“爲……所”구조의 문장형식은 진한 이후의 고서에서 가장 흔히 보이고 또한 줄곧 현대 중국어의 문언문에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피동을 표시하는 것은 “爲” 이외에도 “見”, “被”가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盆成括見殺 [분성괄이 피살되었는데]《孟子•盡心 下》 吾長見笑於大方之家 [나는 오래도록 대가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莊子•秋水》
國一日被攻, 雖欲事秦, 不可得也 [나라가 하루 아침에 공격을 받게 된다면 비록 그제야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더라도 뜻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戰國策•齊策1》
信而見疑, 忠而被謗, 能無怨乎?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았으니 원망이 없을 수 있겠는가?]《史記•屈原賈生列傳》
그러나 이것은 상고시대 한어에서 피동문의 주요 형식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상론하지 않는다. 고대 한어 서술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어기사’는 “矣”와 “焉”였다. (一)矣
“矣”는 ‘動態표시 어기사’로서 사물의 변화와 발전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矣”는 대체로 사물의 발전이 현재 단계에서 새로운 상황의 단계로 이행되었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吾知所過矣 [이제 내 잘못을 알았소]《左傳•宣公2年》(본래 알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알게 되었다) 寢門闢矣 [침실 문을 열자]《左傳•宣公2年》(본래 잠겨있으나 지금은 열렸다)
余病矣 [내가 부상을 입었다]《左傳•成公2年》(본래 건강하였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었다)
王無親臣矣 [왕께서는 믿을 만한 신하가 없어]《孟子•梁惠王下》(본래 친한 신하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어떤 문장은 “已”, “旣”, “嘗” 등과 같은 시간표시 부사를 사용하여 ‘어떤 상황이 이미 이와 같이 되었다’거나 혹은 ‘일찍이 이런 상황이 있었음’을 표시한다. 그 문장의 끝에 “矣”를 사용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그것을 ‘상황 변화’로 보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平原君曰﹕“勝已泄之矣” [평원군이 말하길 “제가 이미 (장군께서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니]《戰國策•趙策3》 鄭旣知亡矣[정나라는 이제 망할 것을 각오했습니다]《左傳•僖公30年》
且君嘗爲晉君賜矣 [또한 당신께서 일찍이 진공에 은혜를 베푸심에]《左傳•僖公30年》
昔齊威王嘗爲仁義矣 [옛날에 제나라 위왕이 일찍이 인의를 행하여]《戰國策•趙策3》
어떤 경우에는 아직 어떤 상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나타날 것이 예상될 때 “矣”를 사용하는 것도 역시 그것을 ‘상황 변화’라 보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孔子日﹕“諾, 吾將仕矣” [공자가 말하기를 “알겠습니다. 이제 벼슬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論語•陽貨》 虞不臘矣 [우나라는 이제 납제를 지내지 못할 것이다]《左傳•僖公5年》
다음의 예문은 ‘종속절을 포함한 복문’인데 종속절은 가정을 나타내고, 주절은 이런 가정적 조건 하에서의 ‘결과’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君能補過, 袞不廢矣 [당신께서 능히 실수를 고칠 수 있다면 장차 임금의 지위는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左傳•宣公2年》 使梁賭秦稱帝之害, 則必助趙矣 [위나라가 진의 칭제가 가져올 해로움을 깨닫게 된다면 반드시 장차 조나라를 돕게 될 것입니다]《戰國策•趙策3》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미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몄을 것이다]《論語•憲問》
[종속절이] ‘이미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를 의미하든 혹은 ‘장차 이와 같이 될 것이다’를 의미하든 어느 경우든 모두 “矣”는 ‘상황 변화’를 알려 주는 것이다. ‘가능표시문[소다 주-‘可’ ‘能’ 포함문장]’도 비록 서술문에 속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의[*소다 첨가]) ‘상황 변화’를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公聞其期, 日﹕“可矣!”[공이 그 시기를 듣고 말하길 “이제 때가 되었다.”라고 했다]《左傳•隱公元年》 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으리라]《論語•里仁》(“可也”와 “可矣”의 차이에 주의해야 한다. “可也”는 단순한 판단이고, “可矣”는 이전에는 불가능했으나 현재는 가능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吾惛, 不能進於是矣 [나는 성정이 어두워 예전에는 여기까지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孟子•梁惠王上》
형용사를 술어로 한 ‘묘사문’도 동일하게 “矣”자를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묘사문’도 동일하게 ‘상황 변화’를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國危矣 [나라가 이제 위태로워졌습니다]《左傳•僖公30年》 今老矣 [이제는 늙었습니다]《左傳•僖公30年》
夫如是, 則能補過者鮮矣[이와 같다면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이가 드물게 될 것입니다]《左傳•宣公2年》
어떤 때는 묘사문의 술어부분을 앞으로 보내고 뒤에는 다시 “也”를 사용하여 문장을 끝맺는다(“也”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면 곧 과장의 어기가 더해진다. 그러나 “矣”자 자체가 과장 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嘻! 亦太甚矣, 先生之言也! [아! 크게 지나치십니다. 선생의 말씀은!]《戰國策•趙策3》 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꿈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한 것이!]《論語•述而》
‘祈請文’도 “矣”를 쓰는데, 이것은 기원하거나 명령하는 자가 상대방이 어떤 행위를 '실현'하거나 어떤 일을 '완성'하길 바라는 것이다. [* 소다 : 矣의 경우, '알려 주는' 서술의 기능이 주된 것이고 이러한 기청의 기능 및 의문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특수한 예에 속한다. 아래에 절대 다수의 “矣”는 모두 현대의 “了”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한 왕력의 견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先生休矣! [선생은 이제 쉬십시오]《戰國策•齊策4》 君姑高枕爲樂矣! [당신은 이제 베게를 높이 베고 즐거움을 누리십시오]《戰國策•齊策4》
결론적으로 말해서, “矣”의 문법적 의미는 현대 중국어 어기사 “了”의 문법적 의미와 서로 비슷하다. 절대 다수의 “矣”는 모두 현대의 “了”로 번역할 수 있다. “矣”는 또 의문문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矣”는 여전히 원래의 문법적 의미[ *소다 : 상황변화를 알려주는 기능인데 여기서는 '상황변화(-되다)'를 의미한다.]를 가지고 있다. 다만 문장 안에는 의문 대명사 혹은 의문 부사가 있기 때문에 “矣”는 의문의 어감을 도울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年幾何矣? [나이가 얼마나 되었습니까?]《戰國策•趙策4》 事將奈何矣? [일이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戰國策•趙策3》
何如斯可謂之士矣? [어찌하여야 선비가 되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論語•子路》
德何如則可以王矣? [덕이 어떠해야 王者가 되었다 할 수 있습니까?]《孟子•梁惠王上》
(2) 焉 “焉”은 ‘지시대명사’ 겸 ‘어기사’다. 그것은 항상 어떤 범위 혹은 방면을 지시하기 때문에 지시대명사라고 하고, 또 항상 서술문(*알려주는 글)의 문장 끝에 사용되어 ‘끝맺음’을 알려주기 때문에 어기사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焉” 뒤에 다른 어기사를 덧붙이지 않는다. “焉”자가 지시하는 범위 혹은 방면은 항상 장소나 인물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制, 巖邑也, 虢叔死焉 [제는 험한 성입니다. 괵숙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左傳•隱公 元年》 (괵숙이 거기서 죽었다) 余收爾骨焉 [내가 거기서 너의 뼈를 거두게 될 것이다]《左傳•僖公32年》(내가 거기서 너의 유골을 거둘 것이다)
文王之囿方七十里, 芻蕘者往焉, 雉兎者往焉[문왕의 동산은 사방70리이나 꼴 베고 나무하는 자가 그리로 가며 꿩을 잡고 토끼를 잡는 자들이 그리로 갈 수 있었습니다.]《孟子•梁惠王 上》(나무꾼과 사냥꾼 모두 거기에 간다)
三人行, 必有我師焉[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거기 우리의 스승이 있다]《論語•述而》(이 세 명 중 반드시 우리의 스승이 있다)
見賢思齊焉 [현명한 이를 보면 그와 같게 되기를 생각합니다]《論語•里仁》(현명한 이를 보면 그와 나란하기를 생각한다. 즉 그와 더불어 나란하기를 생각한다)
非曰能之 願學焉 [그것을 능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論語•先進》(그 방면에서 공부하길 원한다)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군자의 도는 셋인데 나는 그에 능하지 못하니라]《論語•憲問》(나는 이 셋에 모두 능하지 못하다)
吾聞庖丁之言, 得養生焉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서야 거기서 양생의 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莊子•養生主》(여기에서 양생의 도를 깨달았다)
이런 용법의”焉”은 만약 그 앞이 형용사라면[소다 주-묘사문] 바로 비교대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晉國, 天下莫強焉[진나라가 천하에 제일 강함]《孟子•梁惠王上》(천하에 어느 나라도 진나라 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過而能改, 善莫大焉 [잘못을 고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左傳•宣公2年》(어떤 좋은 일도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 소다 : 의미상으로는 莫大善焉과 같다.]
우리는 “之”와 “焉”의 구별에 주의해야 한다. 동사와 결합할 때 “之”자는 타동사 뒤에 쓰고, “焉”자는 자동사 뒤에 쓴다. 위에서 든 예를 살펴 보자. “非曰能之, 願學焉”의 “能”은 고대에 타동사였고, “學”은 자동사[* 소다 : 學焉은 學於此로 볼 때 學이 자동사라는 것이다]로 쓰였다. 같은 동사에 “之”나 “焉”을 덧붙이면 단어의 뜻이 다르다. “死焉”의 “死”는 자동사이며 일반적인 뜻이다. 예를 들면 “虢叔死焉”의 경우이다. “死之[*소다 : 의미상으로는 死爲之와 같다. 위동용법으로 설명된다. 양백준도 之의 설명에서 형태는 목적어지만 개사가 생략된 것이라고 하였다. ]”의 “死”는 타동사며 순절(殉難)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左傳•宣公2年》 “提彌明死之 [제미명은 순절하였다]”의 경우이다. “焉”자는 비록 대명사이지만 그 위치는 언제나 문장의 끝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점점 어기사의 성질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焉”자가 문장 속에서 ‘於’ 전치사구와 함께 나오면, “焉”의 대명사 성질은 약화되고 그 어기사 성질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과인은 나라에 대해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孟子•梁惠王 上》(“焉”과 “於國”이 동시에 나왔다) 夫子言之, 於我心有戚戚焉 [선생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내 마음이 슬퍼집니다]《孟子•梁惠王上》(“焉”과 “於我心”이 동시에 나왔다)
때때로 “焉”은 비록 ‘於’ 전치사구와 함께 나오지 않는다 해도 대명사의 성질을 완전히 상실해버려서 단지 순수한 어기사로만 볼 수 있을 뿐이고 사람의 주의를 끄는 어감을 가질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擊之, 必大捷焉 [공격하면 반드시 크게 이길 것입니다]《左傳•僖公32年》 宗廟之事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종묘의 제사나 혹은 제후의 회맹이 있을 때에 예복과 예관을 갖추고 贊禮가 되길 원합니다]《論語•先進》
君以爲易, 其難也將至矣﹔君以爲難, 其易也將至焉 [당신이 쉽다고 여기면 장차 어려움이 따르게 되고 당신이 어렵다고 여기면 장차 쉬움이 따르게 됩니다]《國語•晋語4》
子日﹕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공자가 말씀하셨다. “군자는 능한 것이 없음을 걱정하고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論語•衛靈公》
마지막의 두 예문은 계발성이 풍부하다. 이 두 예문은 모두 대등문의 문법이다. 세 번째 예문의 앞 절에서는 “矣”를 썼고, 뒷 절에서는 “焉”을 썼다. 네 번째 예문의 앞 절에서는 “焉”을 썼고, 뒷 절에서는 “也”를 썼다. 비교해보면 “焉”이 나타내는 것은 어기임을 알 수 있다. 어기사 “焉”은 어느 정도 현대 중국어의 “啊”와비슷하다. 그러나 모든 문장의 “焉”을 모두 “啊”로번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은 모두 “焉”의 활용법이라 볼 수 있고 “焉”의 본래 용법은 여전히 지시대명사 겸 어기사이다. “矣”와 똑같이 “焉”도 의문문에 쓸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焉”은 여전히 원래의 문법적 의미[ * 소다 : 대명사(於此)의 기능]를 가진다. 다만 문장 속에 의문대명사 또는 의문부사가 있기 때문에 “焉”은 의문의 어감을 나타내는 것을 도울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君何患焉? [당신은 어찌하여 (그에 대해) 걱정하십니까?]《左傳•隱公元年》 旣富矣, 又何加焉? [풍족해진 다음에는 (거기에) 또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論語•子路》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何擇焉? [왕께서 만약 그 소가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하게 여기셨다면 (거기에서) 어찌 소와 양을 가리셨겠습니까(차별하셨겠습니까)?]《孟子•梁惠王 上》
이 밖에 고서에서 또 어떤 “焉”은 문장 중간에서 마치 앞 글을 받아 뒤로 이어주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命舟牧覆舟, 五覆五反, 乃告舟備具於天子, 天子焉始乘舟. [주목에게 명하여 배를 살피게 하길 다섯 번 뒤집고 다섯 번 잦혀서 천자에게 배가 구비되었다고 알리면 천자가 이에 비로소 배에 올라]《呂氏春秋·季春紀》 公輸子自魯南遊楚, 焉始爲舟戰之器 [공수자가 노나라에서 남쪽 초나라로 가서 이에 처음 수상전에 필요한 무기를 만들었다]《墨子•魯問》
必知亂之所自起, 焉能治之﹔不知亂之所自起, 則不能治[반드시 혼란이 일어난 이유를 알아야 그래야 그것(난)을 다스릴 수 있다. 혼란이 일어난 이유를 알지 못하면 다스릴 수가 없다] 《墨子•兼愛 上》
이런 “焉”은 또 “安”이나 “案”으로 쓸 수 있다. 《荀子》에 비교적 자주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故先王聖人安爲之立中制節 [그러므로 이에 선왕과 성인이 그들을 위해서 중도를 세워 절제 있게 하였다]《荀子•禮論》 是案曰是, 非案曰非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한다]《荀子•臣道》
어떤 사람은 이런 “焉”을 “於是[그래서]”, “乃[이에]”, “則[즉]”으로 해석하고 접속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용법의 “焉”은 지시대명사 “焉”과 여전히 서로 통한다. 만약 지시대명사 “焉”이 문장 끝에 쓰였기 때문에 점점 어기사의 성질을 띠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문장 중에 쓰여 점점 관련된 품사의 성질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焉”의 이런 용법은 충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서에서도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古漢語通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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