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향교,서원)

[스크랩] 도곡서당 이야기

장안봉(微山) 2013. 2. 5. 16:51

 

 

 

 

 

 

 

 

명 칭 :  도곡서당(道谷書堂)
소 재 지 :  상주시 서곡동 산38
(원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서곡동 산38)
건 축 주 :  신잠(申潛, 1491 ~ 1554)
건축시기 :  1553년(명종 8)
중건시기 :  1677년(숙종 23)

건축 배경
도남서당(道南書堂)은 후계(后溪) 김범(金範)이 은거하며 학문을 강마하던 곳이다. 임란에 소실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1677년에 이익달(李益達)이 인근 마을 8개 문중에서 1인당 보리 1말과 돈 1전씩 지원을 받아 중건하였다. 이때 향교와 근암서원(近巖書院), 도남서원(道南書院)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세규(姜世揆)가 지은 도곡서당중수기(道谷書堂重修記) 의하면, “영천(靈川) 신(申)공 잠(潛)이 상주 목사가 되어 와서 서당을 창시하여 선비들의 과업을 닦는 곳으로 하였는데 간간이 병난을 만나 흥폐가 같지 않았다. 도곡도 다만 남은 터만 있고, 서로 전하여 이르기를 일찍이 후계(后溪) 김선생이 이곳에 가둔하였다 한다.
동부가 그윽하고 경계가 넓고 한가로우니 학자들이 모여 수업하는 곳으로 마땅하다. 1697년 정축년(숙종 23)에 여러 선배들이 뜻을 모아 경시하니 이(李)공 익달(益達)이 일을 주관하였다. 4년이 지나 강학 할 수 있는 곳이 완성되었고, 곁의 요사는 중들을 모아 전수하기를 오래 하더니 뒤에 떠나고 흩어졌다.
서당의 업무는 연장자가 돌아가며 관장하고 당첩은 연령을 순서로 나열하여 기록하였으며, 문회와 강신은 여기에서 하고 연회와 독서도 반드시 이곳에서 하였으니, 제사지내는데도 절차가 있고, 기선이 법규에 맞게 하니, 이는 집안의 서실을 모방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강우(講宇)가 내간의 음지에 위치하니 습기의 침잠이 심하여 어쩔 수 없이 기울고 허물어지니 거금 120여년에 다섯 번이나 수선하였다.”고 하여 서당을 중건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건축 특징
상주에 소재한 서당들은 거의 한 사람에 의해 한 시대에 지어진 것이 많다. 도남서당 역시 상주 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신잠의 행장을 보면, “상주에는 속현이 넷인데 모두 궁벽하다. 선비들이 학문을 닦을 곳이 없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이에 서당이나 서원을 개설할 때에 땅을 고르고 서당을 지음에 비록 굶주림이 극에 달하여도 봉록을 절약하여 그 비용에 보태었으며, 또한 주민들에게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상주의 선비들이 다투어 경모하고 모범을 삼았다. 궁벽진 시골에서도 스스로 서당을 세우지 않은 곳이 없으며, 서당으로 이름 한 것이 십 여 곳이 넘었다.”라고 되어 있어 설립 과정의 한 특징이라 할 만 하다.

건축 구성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정면 2칸은 우물마루로 창호는 사분합들문으로 여름이면 들어서 열 수 있다. 양쪽의 방은 각각 1통칸의 온돌방으로 북향하여 전면의 개류를 내려다보고 있다. 건물의 우측에 정면 4칸의 목조 요사채가 있다.

현판
도곡서당(道谷書堂)
서당 가운데에 걸려 있는 당호 현판이다.

 

관련의례
- 서당 취회는 매년 음력 11월 15일
도곡서당은 연악의 서쪽 산기슭 서곡동에 자리 한다. 주변에 기암괴석과 폭포가 조화를 이루는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상주에 열여덟 서당이 있으니 도곡도 그 중의 하나이다. 옛적 중종과 명종 때에 치화가 크게 일어나고 학문이 크게 나타났다. 이럴 때에 영천(靈川) 신(申)공 잠(潛)이 상주 목사가 되어 와서 서당을 창시하여 선비들의 과업을 닦는 곳으로 하였다.

일찍이 후계(后溪) 김범(金範)이 이곳에 은둔하여 학문을 익히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동부가 그윽하고 경계가 넓고 한가로우니 학자들이 모여 수업하는 곳으로 마땅하다.

1697년 정축년(숙종 23)에 이익달(李益達)이 중건하였다. 이로부터 강우가 내간의 음지에 위치하니 습기의 침잠이 심하여 어쩔 수 없이 기울고 허물어지니 120여년에 다섯 번이나 수선하였다.

1817년 정축년(순조 17) 중건은 이중환(李重煥)이 짓는 것을 감독하였다. 이익달의 4세손이 된다. 처음 짓는 것과 수리하는 것은 앞에도 정축년과 뒤에도 정축년에 하고, 간사와 감조는 선조와 후손이 하니, 이 또한 우연이 아니다. 고 한다.
각 문중의 서당 취회는 매년 음력 11월 15일에 실시한다.

 

관련인물

관련인물
- 김범(金範)
1512(중종 7)~1566(명종 21). 본관은 상주이다. 자는 덕용(德容)이며, 호는 후계(后溪) 또는 동계(桐溪)이다. 1540년(중종 35) 진사시에 장원하였고, 1566년(명종 21) 천거로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다시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옥과(玉果)현감이 되었으며, 명종의 부름으로 조식(曺植)과 함께 학문과 정치에 관해 진언하였다.
만년에 주자학에 전심하여 많은 후진을 가르쳤다. 인조 때 효자정문이 세워졌고, 상주의 옥성서원(玉成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후계문집(后溪文集)》이 있다.
- 김홍민(金弘敏)
1540(중종 35)∼1594(선조 27).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자는 임보(任甫)이며, 호는 사담(沙潭)이다. 아버지는 옥과현감 범(範)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1570년(선조 3)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과 삼사(三司)를 거쳐, 1584년 이조좌랑으로 삼사와 같이 이이(李珥)와 박순(朴淳)을 탄핵하였다. 사인(舍人)에 이어 1590년 전한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규합하여 충보군(忠報軍)이라 칭하고 상주에서 적의 통로를 막아 공을 세웠다.
- 김홍미(金弘微)
1557(명종 12)∼1604(선조 37).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자는 창원(昌遠)이며, 호는 성극당(省克堂)이다. 아버지는 옥과현감(玉果縣監) 범(範)이다. 조식(曺植)과 류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1579년(선조 12) 진사가 되고, 1585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발탁되고, 홍문관정자·저작(著作), 예문관검열 등을 거쳐 부수찬을 역임하였으며, 당시 형인 홍민(弘敏)과 함께 사림으로 영예를 누렸다.
1589년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남인으로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다.

임진왜란이 시작될 무렵에는 경상좌도도사가 되고, 이어 교리 겸 시강원문학을 거쳐 이듬해 경연관, 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승정원동부승지로 있을 때,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李舜臣)을 탄핵하여 파면하게 하고 원균(元均)을 통제사로 삼게 하는 데 가담하였다. 좌부승지, 훈련도감제조를 거쳐, 승문원부제조 등을 역임하다가 1598년 관직을 사퇴하였다.

그 이듬해 다시 청송부사(靑松府使)를 거쳐 1604년 강릉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이듬해 큰 비가 내려 백성이 많은 재난을 당하였다. 이에 약한 몸을 이끌고 수재로 죽은 자의 조문과 굶주린 자의 진휼에 힘써 직무에 충실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 관련인물

- 신잠(申潛), 김범(金範), 이익달(李益達)

마을이야기

상주 > 시내권 > 서곡동
- 도곡서원이 있는 서곡동은 행정구역상 동성동에 위치한다. 동성동은 한 말(조선 말)에는 상주군의 내동면과 내남면 지역이었다.
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주면에 편입되었고, 1931년 상주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성하와 성동은 동으로 개칭되었다. 성하동은 한 말 내동면지역이었고, 상주읍성(尙州邑城)의 아래 있다 하여 성하리였다가, 1914년 상주면에 편입되었고, 1931년 상주가 읍으로 승격하면서 성하동이 되었다.

1986년 상주읍이 시로 승격할 때 성하동, 성동동, 거동, 인평동, 서곡동 5개 동을 병합하여, 옛날 상주성의 동쪽 지역에 있다하여 동성동이라 했다.

서곡동(書谷洞)은 한말 상주군 내남면의 지역이다. 1914년 구역 개편에 따라 도중(道中, 道谷), 서당(書堂), 화개리(花溪里)를 병합하고, 서당(書堂)과 구도곡(舊道谷)의 이름을 따서 서곡(書谷)이라 하여 상주면에 편입했다. 상주가 市로 승격하면서 동성동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인근에는 일명 한산사라고도 불리는 동해사가 자리 한다. 1398년(태조7) 무학대사가 "상주는 지형이 행주형 이어서 높은 곳에 집을 지어 주음의 역할을 해야 안정하다."하여 지은 절이라 전한다. 1600년대 중기 숭명처사 이경남이 경내에 충효당을 짓고 숭명배청의 사상을 고취한 후 로 이 뜻을 기리는 수많은 시문을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출처 : 수산
글쓴이 : 군계일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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