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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세계유산] 석굴암 (문화유산)|♡ 한국의 세계유산

장안봉(微山) 2013. 2. 3. 06:32

석굴암                                              검색창으로>>>한국의 세계유산을 검색 해보세요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하여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금강역사상,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석굴암의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360여 개의 판석으로 원형주실의 궁륭천장 등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석굴암의 입구쪽에 위치하고 있는 평면방형의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8부신장을 두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2구씩의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 석주를 세웠고 이곳을 지나면 평면원형의 주실로 본존은 중심에서 약간 뒤로 안치되어 있으며 입구 좌우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로 주벽을 채우고 본존 정후면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조각에 있어서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석가여래상, 10구의 얼굴과 전신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인왕상의 용맹, 사천왕상의 위엄, 주실내의 보살들의 유연 우아한 모습, 나한상들의 개성있는 표현 등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 것이다.

특히, 주실내에 봉안되어 있는 굽타양식의 본존불 석가여래불은 고요하고 결가부좌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로움, 금방이라도 말할 듯한 입과, 코, 길게 늘어진 귀 등 그 모든 것이 내면에 깊은 숭고한 마음을 간직하도록 조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미를 대표하고 있다.

이 석굴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경주 토함산 정상에 못 미친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과 독창적 건축으로 전세계에 이름이 높다.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공간에도 본존불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석굴암은 전실, 통로, 주실로 이루어졌다.

방형 공간인 전실에는 팔부중상과 금강역사상이 있고,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 궁륭(Dome)천정으로 짜여진 원형공간의 주실이 나온다. 주실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대불이 있고,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범천상(梵天像)과 제석천상(帝釋天像), 보현(普賢)·문수(文殊)보살상, 그리고 십대제자상(十代弟子像)이 대칭을 이루도록 조각돼 있다.

일찍이 당나라의 현장(A.D602~664)이 17년간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성지를 순례한후 지은 풍물지리지 성격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석가모니가 정각을 이룬 바로 그 자리에 대각사(大覺寺)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 정각을 이룬 모습의 불상이 발을 괴어 오른발 위에 얹고, 왼손은 샅 위에 뉘었으며 오른손을 늘어뜨리고 동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대좌의 높이는 당척 4척2촌이고 넓이는 1장2척5촌이며 상의 높이는 1장1척5촌, 양 무릎폭이 8척8촌, 어깨폭이 6척2촌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석굴암의 본존불 크기와 이 기록이 일치하고 있는데, 현장이 보았던 대각사의 그 불상은 현존하지 않고 있어 석굴암에 역사적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천체를 상징하는 둥근 공간에 이르면 한가운데에 높이 350cm의 당당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지닌 석가모니 대불이 동해를 향해 앉아 있다.

얼굴과 어깨를 드러낸 옷의 주름에 생동감이 있어 불상 전체에 생명감이 넘친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가늘게 뜬 눈과, 엷은 미소를 띤 붉은 입술, 풍만한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모양은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으로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오른손은 무릎에 걸친 채 검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어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 즉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성도상(成道像)이라고 한다.

감실은 주실에서의 위치로 보아 지상계와 천상계의 중간을 뜻한다. 이는 교리적인 면에서 보면 보살이 각자(覺者)인 여래와 무명(無明)중생의 중자적인 존재라는 점과 잘 어울린다. 미륵보살상의 오른쪽 어깨, 손목, 오른쪽 무릎으로 이어지는 직삼각형이 안정감을 주는 반면 세운 무릎, 비스듬히 얹은 팔, 숙인 얼굴이 그리는 곡선은 변화와 운동감을 주고 있다.

전실 벽면에 있는 8구의 팔부중상은 무사의 성격을 띠고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가지 모습의 신들이며, 치마를 입은 금강역사상 또한 불법을 수호하는 한쌍의 수문장으로서 상체의 근육이 발달한 용맹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금강으로 만든 방망이를 들고 있다하여 금강역사라 칭했다.

석가모니 대불이 앉아 있는 곳인 둥근 주실 뒷벽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십일면관음보살상 (十一面觀音菩薩像)의 아름다운 자태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머리둘레에 열구의 얼굴이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끄는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표정, 화려하게 전면을 장식한 영락(瓔珞:구슬이나 귀금속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天衣), 손가락 발가락의 미묘한 움직임, 왼손은 한송이 연꽃이 꽂혀있는 병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서 영락을 잡고 정면관의 자세로 서 있는 모습에서 화려함과 원숙함을 느끼게 한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문화의 황금기에 건립된 석굴암은 불교사상과 매우 발달한 수리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건축 기술, 뛰어난 조형감각으로 완성되었다. 우리가 석굴암에서 느끼는 장엄미와 숭고미는 이러한 바탕과 그 속에 내재하는 조화율에 있다 하겠다.

석굴암은 석가모니가 정각 즉,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가시적인 건축과 조각으로 재현한 것이며, 조각에 있어서도 인위적인 기교나 부자연스러움없이 생명력이 넘치며 원숙한 조법과 탁월한 예술성이 돋보인다. 절대적인 경지인 정각을 통해 인간 석가모니는 형이상학적 존재인 석가여래가 되고, 속세는 법계라는 이상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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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4호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시대 : 통일신라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넙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본존불

석굴암의 본존 부처님은 높이 총 높이 326㎝, 대좌 높이 160㎝, 기단 상대석 폭 272㎝의 거대한 불상이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얼굴 상은 안정감이 있으며 종교적인 숭고함을 띄고 있다.

우리가 뚜렷한 명칭 없이 본존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존재를 둘러싸고 불교학계와 고고미술사학계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본존 부처님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불교계의 주장은 전통적인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고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황수영 박사의 아미타 부처님설은 7~8세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추정해서 당시 세워진 본존 부처님 대부분이 아미타 부처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두 학설 모두 설득력이 있지만 이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1998년 퇴임)로 재직 중이던 신현숙씨의 경전적 해석, 특히 석굴암 만다라설은 본존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일 가능성에 대해 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렇듯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빼어난 작품성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게 하는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동해를 바라다 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형태의 위엄 만큼이나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통일신라 불교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팔부신중八部神衆 팔부중 또는 천룡팔부 등으로도 부르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들의 상으로, 전실의 좌우 벽에 각 각 4구씩 배치되어 있다. 전실 입구 오른쪽부터 가루다 · 마후라가 · 야차 · 데바 · 왼쪽은 아수라 · 긴나라 · 건달바 · 나가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루다상은 인도의 새벽 태양의 신이 불교에서 불법을 설하는 곳의 수호신으로 표현되는 신중상이다. 석굴암에서는 두터운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있는 입상으로 표현되었다. 왼손에는 삼지창을 쥐고 있고, 두 귓가에는 날개 모양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본실의 조각들보다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째의 마후라가는 인도의 수호신 격이었던 것이 불교에서 팔부신중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왼손에는 검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군지를 들고 있다. 세 번째의 야차의 상은 인도에 데바 신으로 불교의 팔부신중상의 하나로 자리한다. 석굴암의 천 상은 두광은 화염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두손은 가슴께에서 수인을 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옷주름이 두껍게 표현되어 있다. 네 번째 데바가 상은 뱀을 상징하는 신으로 땅속의 마귀를 진압하는 신중이다. 석굴암에서는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있고, 왼손은 자연스레 구부려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있다. 좌측 제1상인 아수라 상은 인도의 악의 신이었으나 불법에 귀의하여 신중의 자리를 점하였다. 석굴암에서는 현재 머리와 발 부분의 부재는 결실된 형태로 남아있으나, 3면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의 특징은 잘 남아 있다. 옷주름은 가벼운 천을 두른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좌측 두 번째 상인 긴나라 상은 본래 악사의 기능을 담당한 신이었다가 팔부신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군복을 입은 모습에 왼손에 삼차극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를 기른 상으로 단정한 형태로 서 있다. 좌측 세 번째 건달바 상은 인도 신화에서는 악신이었으나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수호신으로 위치한 신중이다. 석굴암에서는 머리 위에 사자를 두르고 있으며, 가슴께는 밧줄을 감고 있는 입상의 형태이다. 좌측 네 번째 나가 상은 본래 비와 바람의 신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위치하고 있다. 석굴암에서는 머리에 용을 두르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를 쥐고 있다.

사천왕四天王

 

전시로가 주실을 연결하는 통로의 좌우벽에 배치되어 있다. 수미산의 사방을 관장한다는 천왕으로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으로 부른다. 전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앞에 남방 증장천왕, 뒤쪽에는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앞에 북방 다문천왕과 뒤쪽에 동방 지국천왕이 배열되어 있다.

 

이들 사천왕은 모두 악귀를 발로 밟고 있는 형상으로 서 있는데, 동방천왕은 두 손으로 칼을 들고 있으며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북방천왕은 얼굴을 북쪽으로 돌린 표현에 왼손은 옷자락을 쥐고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보탑을 받치고 있다. 남방천왕은 검을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동방천왕과 유사한 자세이나 발 아래에 있는 악귀의 모습이 업드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방천왕은 오른손은 가슴께에 두고 왼손은 검을 쥐고 있는 자세이다. 얼굴 부분이 따로 제작되어 있어 후대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실인 원굴에 들어서면 좌우의 천부상 다음에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안치된 부처님은 제석이며 그 반대쪽은 범천이다. 이 천부상은 모두 매우 사실적인 묘사에다 세련되고 우아한 작풍을 보인다. 천부상 다음으로 좌우 벽에 새겨진 보살상은 왼쪽이 문수, 오른쪽이 보현보살상이다. 문수보살상은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서서 몸을 굴 안으로 향하였다. 보현보살상은 왼손에 경권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져 있다. 천부상과 더불어 이들 보살상은 석굴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십대제자

석굴 후벽 중앙에 십일면관음상을 안치하고 그 좌우에 곧이어서 각각 5구씩 나한(羅漢) 입상을 배치하였는데, 그 중 왼쪽에 있는 십대제자상이다. 석가여래의 제자 중에서 이름이 높은 수제자 10인을 말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 나한상은 동양에서도 첫째로 꼽을 만큼 훌륭한 부조상을 하고 있다.

십대제자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 얼굴의 다양한 표현이다. 긴 얼굴에 각기 다른 골상을 보이는 서구적인 모습의 이들 제자상은 모두 머리를 깎았으며 큰 코에 야윈 얼굴을 하고 있다. 자세 또한 정면 또는 측면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의상의 모양도 서로 다르다. 경권, 향로, 정병 등 각기 손에 들고 있는 것에도 차별이 있어 여러가지의 특색을 보인다.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십일면 관음보살상은 바로 본존 부처님의 뒷면 둥근 벽의 중앙을 차지하고 똑바로 서있다. 그 어느 조각보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석굴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존 부처님 바로 뒤에 배치된 이 조각의 양식적 특성은 무엇보다 머리위에 작은 아홉개의 얼굴이 있고 그 위에 다시 한 관음이 있어서 본체와 합하여 십일면이 있는 관음 보살님이란 점이다. 긴 몸에 섬세하게 표현된 천의와 온몸을 덮고 흐르는 영락(纓珞)은 정교한 귀걸이나 목걸이 등과 더불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석굴암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석굴암 입구에서 주실로 들어가는 좌우에 자리잡고 있다. 금강역사의 역동적인 자태는 이름 그대로 힘이 넘쳐 흐른다. 옷 매무시나 문양에서 보여지는 정교함은 다른 석굴암 조각물과 비교했을 때 많은 차이점이 있다. 두드러지게 양각이 강조된 것은 전반적으로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상신과 하신의 구분된 의상은 근육을 더욱 강조하고 현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조각물의 기법은 제작자의 의도와 일치한다. 석굴암 제작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작자의 예술적인 감각과 작품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감실

석굴 주벽상의 위쪽에는 남북과 동으로 각각 5개의 반구형 감실이 배치돼 있다. 석굴과 잘 조화되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 이 감실은 동시에 공간의 확대효과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대부분 보살상인 이 감불좌상은 본존불의 바로 전방과 그 후방인 십일면관음상의 상면만을 피하고 그 나머지 벽면에 배치되어 하늘과 땅과의 중간에서 이 석굴의 영광과 장엄을 찬미하고 환희하는 것 같다. 조각 또한 주위의 벽에 있는 다른 여러 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 주 목 (천리향)
글쓴이 : 주 목 (천리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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