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경북 안동] 광산김씨 구담 입향조 담암 김용석(潭庵 金用石) 묘와 유허비

장안봉(微山) 2015. 9. 29. 05:52

담암 김용석(潭庵 金用)

 

23세 (광산김씨 양간공파/판군기감사공파/퇴촌공파/담암공) (1453∼1523) 71歲.

조선 중기의 유현(儒賢), 字는 연숙(鍊叔), 호는 담암(潭庵), 아버지는 증판서(贈判書) 수(洙)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집의 항(恒)의 딸이다.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며 1472년(성종 4) 진사시에 합격하고 문과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로 스승 김종직과 동문인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 등이 화를 당하자 부인 김씨(金氏)의 고향인 안동 구담(安東 九潭)으로 내려와 살았다.

주문공(朱文公: 朱子)의 고사를 모방하여 향약을 설정하고 매월 1일 태학관(太學館: 成均館의 別稱)에 모여 삼강오륜을 주제로 소학을 강의하여 미풍양속을 진흥시켰다. 이 때 참여한 명사는 김용석(金用石), 신종호(申從濩), 박연(朴演), 손효조(孫孝祖), 정경조(鄭敬祖) 등이다. 추강(秋江) 남효온은 장안에서 10명의 준사 중 항상 김용석을 우두머리로 뽑았다.

천성이 청렴결백하고 강의강직하여 외물(外物)에는 추호도 동요되는 일이 없었다. 이 때 정정으로 보아 집권 간소배들의 소행이 미구에 사화를 일으킬 조짐이 보이므로 가솔을 데리고 안동으로 이사하여 학문을 탐구하며 가난하나 초수(樵 : 나무하는 늙은이)와 같이 세월을 보내며 자제들에게 이르기를 사부(士夫: 남자의 美稱)가 성균 진사만은 아니 할 수 없으나 대과(大科: 文武科)에는 참여치 말라 하였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일두(一 ) 정여창(鄭汝昌) 선생과 같이 동문수학하였고 1796년(정조 21) 안동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배향되고 또 돈정사(遯靖祠)에 배향되었다.

 

담암공 묘역

담암공 묘소 전경

 

 

 

 

 

 

 

 

 

 

 

재실 숭모재

 

담암공 유허비각

 

 

 

비문은 눌은 이광정(訥隱 李光庭)이 찬하였다

 

비각기는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 선생이 찬하였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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