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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남 창원] 영의정 양장공 최운해(襄莊公 崔雲海)장상 묘-통천최씨

장안봉(微山) 2015. 9. 29. 05:49

양장공 최운해(襄莊公 崔雲海)

 

1347(충목왕 3)∼1404(태종 4). 고려 말·조선 초의 무신.

 

본관은 통천(). 자는 호보(). 호군() 녹(祿)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전공()으로 공민왕 때 충용위산원()에 기용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전공총랑()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주병마사가 되어 왜구를 무찔렀다. 그 뒤 순흥·영주등처조전병마사 겸 경상도병선도관영사(使)가 되어 여러 번 왜구를 격퇴했으며, 마침내 순흥부사가 되었다.

이 때 왜구가 객관()에 웅거하며 매일 침략하자 이를 격퇴하고, 노획한 우마()와 재화()를 병사와 주민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또 굶주리는 백성을 잘 구호해 칭송을 받았다. 이러한 전공을 세워 전법판서()에 초수()되었다.

왜구가 다시 원주·충주·단양·제천 등지에 쳐들어오자 조전도병마사(使)가 되어 이를 물리치고 충주목사가 되었다. 전주목사를 거쳐 밀직부사가 되어 충근좌명공신()의 호를 받았다. 그 뒤 양광도·광주등처절제사 겸 판광주목사(使使)로 왜구를 물리쳐 전공을 세웠다.

1388년 전라도 부원수()로 요동정벌 때 좌군도통사(使) 조민수()의 막하로 출정했던 도순문사(使) 정지() 등과 함께 왜구를 격파하였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원종공신()이 되고, 이듬 해 문하평리()로 양광도절제사가 되어 박위() 등과 함께 왜구를 격파하였다.

1396년 지중추원사()로 경상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영해( :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397년 항복했던 왜구들이 지울주사() 이은() 등을 납치해간 지난 해의 사건이 폭로되어 청해도수군()에 충군되었다.

그 뒤 풀려 나와 1399년(정종 1) 전라도조전절제사로 왜구를 방어하였다. 이듬 해에는 참판삼군부사()로 예문관학사 송제대()와 함께 남경()에 다녀오다가 서원군()에서 군수 박희무()를 구타하였다. 이 사건으로 한때 음죽( :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402년(태종 2)에는 이성도절제사(使)로 태조를 시위했고, 강계안무사(使)와 서북면순문사(西使)를 거쳐 참판승추부사()로 사직하였다. 특히 왜구를 무찔러 여러 번 공을 세운 바 있어 명장의 칭호를 얻었다. 윤덕()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시호는 양장()이다.

 

 

 

양장공 치룬해 신도비

 

 

 

 

양장공 묘(후)와 계배 안동권씨 묘(전) 전경

양장공 최운해 묘 전경

 

 

 

 

 

 

 

 

 

 

 

양장공 계배 안동권씨 묘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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