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스크랩] 조선의 훈남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모음

장안봉(微山) 2015. 1. 8. 04:19

 

 

 

퇴계 이황 이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

 

퇴계 이황선생은 1501년 영락한 양반가문의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지 몇개월만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께서 혼자 누에를 쳐가며 남매를 키웠습니다.

당연히 다른 양반집 아이들과는 달리 제대로 과거준비를 할 수도 없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뛰어난 성취를 얻었고

1522년 22살의 나이로 허씨와 결혼했지만

허씨는 아들 3명을 낳고 1527년 산후풍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3년후 권씨와 재혼을 했는데....

아무래도 권씨녀는 좀 4차원이었던듯 합니다.

 

일화1

 

신혼 첫날밤

"힘들게 얻어야 얻은 것이 더 가치있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라면서 옷고름을 엄청 복잡하고 세게 묶어서

밤새 이황선생은 옷고름을 풀기위해 낑낑거려야 했지요...

 

일화2

 

그리고 제사를 지내던 어느날...

부인이 갑자기 제사상 위의 밤이 먹고 싶다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제사 지내는 중에 그런 소리를 했으니 주위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죠..

게다가 남편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선생....

그런데...

 

이황 : "얼마나 먹고싶소?"

권씨 : "마니염!!"

 

그 소리를 들은 이황선생은 제사상으로 성큼성큼 가더니 밤을 한움큼 쥐고 와서 부인 손에 쥐어 줬습니다..

부인은 싱글벙글 좋아하며 밤을 먹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사색이 되서 이황에게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냐고 물었죠...

이에 이황이 말하기를

 

"조상님들도 직접 자시기 보다는 후손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시며 기뻐하셧을 거요"

라고 .....

정말 대인배가 아닐수 없죠...

 

일화3

 

어느날은 부인이 다림질 하다가 이황선생의 두루마기를 태워먹어서 구멍을 내버렸습니다...

그걸 본 선생은 좀 기워달라고 부인에게 부탁을 했는데....

부인은 빨간색 천으로 기워버렸습니다....

즉 하얀 두루마기에 다리미 모양으로 빨간색 천이 덧데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황선생은 아무말없이 그 옷을 입고 외출을 했죠...

그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이 옷꼴이 그게 뭐냐는둥 경박스럽다는둥 한마디씩하자

이황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간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색깔인데

부인이 이를 알고 이렇게 해주었으니 이 어찌 좋지않을 수 있겠소?"

 

라고 말했습니다...(이런 대인배가;;;ㄷㄷㄷ)

 

일화4

 

그리고 권씨는 어느날 어느 아낙네와 이야기를 하는데

아낙네가

"마님께서는 부군께서 고명한 유학자시니 재미가 없으시겠습니다"

라고 말하니 부인이 대답하기를

"자네는 이황이 밤에도 이황인줄 아는가?

라고....

 

또 어떤날은 이황이 방에 앉아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으니 문앞에서 쳐다보다가

"아이고~점잖은척 하기는 밤에는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면서..."

라고 말하고 갔답니다....

당연히 강의하던 이황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제자들은 웃음을 참는다고 죽을 힘을......

 

소드너들이 좋아하는 낮져밤이의 대표적 케이스??

 

앞서의 일화들은 훗날 손자가 장가갈때 보낸 편지에 나온 그의 결혼관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남남이던 남녀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또 한편 가장 바르게 해야하고 가장 조심해야하는 사이다.

그렇게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시작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상사람들은 예와 존경함을 잊고 서로 버릇없이 친하며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여 인격을 멸시해버린다.

이런 일은 바로 서로를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은 까닭이다"

 

 

일화5

 

맏아들이 장가갈때 당시 안동,봉화의 권세가이던 봉화 금씨 가문에 장가를 보냈는데...

봉화 금씨집안은 비록 본인은 당대에 유명한 학자였으나 집안이 한미하던 이황선생을 엄청 무시했습니다.

아들이 장가가던날 사돈집에 방문했는데....

집안의 어른들은 그를 무시해서 아무도 나와서 맞아주지도 않았고

이황집안과의 결혼을 고집했던 예비 며느리의 아버지만 나와서 그를 맞아줬습니다..

대접도 소흘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황은 내색을 안하고 예의를 갖춰 사돈을 대하고 돌아갔습니다.

그가 돌아가자 문중의 어른들이 나와서 온갖 난리를 다피우며 이황의 사돈을 욕했죠

 

"우리 가문 정도면 어떤 권세가와도 이어질수 있거늘 왜 저런 별볼일 없는 인간과 연을 맺어야 한다는 거냐!"

"저런 인간이 우리집 마루에 엉덩이를 붙인것만으로도 집안의 수치다"

 

운운하면서.....

아예 마루에 이황이 앉았던  자리가 더러워졌다면서 대패를 가져다 밀어버렸습니다....

이 소식은 이황의 집안에도 알려졌고 집안사람들은 격노했죠

 

"자기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렇게 무시하는가"

"가서 확 뒤집어 버리자!"

 

하지만 이황선생은 가족들을 불러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사돈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들 우리로서는 관여할 바가 아니다.

가문의 명예란 문중에서 떠든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요, 남들이 헐뜯는다고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이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나도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 가문은 사돈댁 가문보다도 형편없는 가문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 아니겠느냐.

더구나 우리는 사돈댁의 귀한 따님을 우리집 며느리로 맞아오는 터인데,

우리가 만약 그런 하찮은 일로 말썽을 일으키면 새 며느리가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내 며느리를 보아서도 아무 소리 말고 물러들 가거라 "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며느리를 맞아들였습니다.

그후 이황선생은 자주 선물도 해주는등 며느리를 끔찍하게 아꼇고 며느리도 이황선생을 엄청 따랐습니다 

나중에 그 맏며느리 금씨는 죽을때

 

"내 생전 시아버님을 모시는데 부족함이 많았으니

죽어서라도 정성껏 모실 수 있게 시아버님 묘소 가까운 곳에 묻어달라"

 

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래서 지금도 이황선생의 묘소 인근에 묘소가 있습니다.

 

일화6

 

부인 권씨는 이황이 46세 되던해 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둘째아들도 21살의 젊은 나이로 죽자 이황은 큰 슬픔에 빠지죠...

둘째아들에게는 아직 식도 안올린 신부가 있었는데 이 신부는 얄짤없이 청상과부가 되버렸습니다...

기록은 없지만 남편이 21살이었으니 그 신부는 기껏해야 10대후반의 나이였겠죠....

 

그러던 어느날 밤에 정원을 거닐던 이황선생은 둘째 며느리방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분명 며느리 혼자 쓰는 방인데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죠

가까이 가보니 창호지에 왠 남자와 며느리의 그림자가 비치는게 아니겠습니까?

호기심을 못이긴 이황선생은 창호지에 구멍을 내어 들여다 보았는데...

며느리는 사람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앞에 앉혀놓고

자신의 죽은 둘째아들이름을 부르며 상을 차려놓고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느리는 한참을 그 인형과 이야기하더니 결국은 인형을 안고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황선생은 자신의 마음도 찣어지는 듯 했습니다..

자신도 얼마전 아내를 잃었으니 그 심정이 이해가 갔겠죠...

다음날 그는 사돈을 불렀습니다.

 

"댁의 따님은 정말 우리집의 며느리감으로 손색이 없는 좋은 아이입니다. 그러니  이제 데려가십시오..."

 

사돈은 깜짝 놀랐습니다. 말그대로 소박을 놓겠다는 소리고 집안에 대한 모욕이니까요..

 

"대체 우리 딸아이가 뭘 잘못한겁니까?"

"잘못한 것 없습니다. 따님은 정말 좋은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데려가세요."

 

한참을 실랑이를 했고 결국 사돈은 불쾌해하며 딸을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소박(?)을 놓은건 사실 둘째 며느리를 재혼시켜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친정으로 돌아갈때 불러서 이르기를

 

"너희집은 9대독자 집안이고 게다가 너는 외동딸인데 이렇게 살면 안된다.

돌아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며 잘살도록 해라"

 

그리고 몇년후 이황은 단양을 지나가던중 어느 집에 신세를 지게 됐는데

버선이 구멍이 나있자 신으라고 주인이 버선을 주는데 이황의 발에 딱 맞았고

음식이 들어왔는데 자신의 입에 딱 맞았습니다...

신기해한 그는 집주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의 아내가 예전 자신의 둘째며느리라는걸 알게됍니다..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는데 길을 떠나며 흘깃 뒤를 보니 며느리가 돌담뒤에 숨어서 자신이 가는걸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법도에 따라 소박놓은 며느리를 아는 척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황은 인사도 않고 그냥 떠납니다..

비록 인사는 나누지 않았지만 뒤돌아 서서는 그렇게 잘살고 있는 며느리를 보면서 흐뭇해 했을듯 하네요..

 

일화 7

 

부인이 죽고난 2년후 48세의 이황은 단양군수로 발령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두향"이라는 관기를 알게되죠 

그녀는 16살의 기생의 자식으로 양인과 혼인하였으나 혼인몇달만에 남편이 죽고 관기로 복귀한 상황이었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글과 거문고에 능했다고 하는군요...

매화를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던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휴일에는 단양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주고받는 등 데이트(?)를 즐깁니다만..

 

이황의 형인 이해가 충청도 관찰사로 오면서 상피제도에 의해

부임 10달만에 이황은 경상도의 풍기군수로 재발령이 납니다.

이미 서로 사랑하던 사이가 되어 있던 그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죠

이황이 떠나던날 두향은 그를 찾아가 매화화분을 주며 자신처럼 생각해 달라고 하고 이황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이황이 떠난후 새로운 군수가 오자 두향은 수령을 찾아가

 

"저는 이제 퇴계선생님밖에는 사랑할 수 없게 되버렸습니다. 부디 저를 기적(기생명부)에서 지워주세요"

라고 부탁하고 이에 감동한 군수는 그녀를 기적에서 빼줬고 

그녀는 이황과 함께 자주 갔었던 구담봉앞 강선대가 잘보이는 곳에 초막을 짓고 상사병에 걸린체 살았습니다.

이황역시 그녀를 잊지 않았는지 항상 그녀가 준 화분을 어디든지 가지고 다니며 애지중지 했으며

죽기전 남긴 마지막 유언 역시

 

"저 매화화분에 물을 주렴"

이었습니다.

 

두향은 이황의 임종소식을 듣자

 

"내가 죽거든 강선대옆 거북바위에 뭍어다오, 거긴 내가 퇴계선생님과 함께 자주 인생을 논하던 곳이란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강선대에 올라가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후 뛰어내려 자결했습니다.

 

ps

현재 도산서원에 있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바로 두향이 준 매화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이후 두향의 무덤은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했으나

소설가 정비석씨가 단양군수에게 요청해서 안전지대로 이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양 단성면에서는 두향을 기리는 "두향제"를 매년 5월 하고 있습니다.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꼬마니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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