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상례
상례(喪禮)란 자연인의 사망에서부터 치장(治葬 : 매장, 화장 등) 의식을 거쳐
상주들이 상기(喪期)를 마치고 기제(忌祭)를 지내기 전까지의 절차와 의례를 말한다.
오늘날의 도시사회에서는 장의사에게 모든 의식의 집례를 통괄하여 맡기므로
여기에서는 주로 옛부터 전해오는 상례 절차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상례에는 초종(初終), 고복(皐復), 발상(發喪), 습·염(襲·殮), 성복(成服),
발인(發靭), 하관(下棺), 우제(虞祭)와 소대상(小大祥)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세부 절차나 집행 방법에 있어서는 각 지역이나 사회에서의 신분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1) 초종(初終)
망자(죽은 사람)의 유언·임종·수시(收屍 : 시신의 눈을 감기고 코·귀·입을 솜으로 막고 안치시키는 과정)순의
절차가 이에 포함된다. 그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임종과정에서 선비는 여자가 지키고 있는 데서 운명하지 않고,
부인은 남자가 지키고 있는 데서 숨을 거두지 않기 위해서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였다.
최근에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망자의 숨이 끓어지면, 시신을 동쪽으로 눕힌다.
동향은 생성·재생의 방위이므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손발이 굳기 전에 살살 주물러서 곧게 편다.
중풍 등의 고질로 수족이 오그라져 있는 사람은 판자를 받쳐서 소렴 때까지 단단히 묶어놓는다.
2) 고복(皐復)
고복은 떠나가는 영혼을 다시 불러 들여 재생하기를 비는 초혼(招魂)의식이다.
망령이 혹시 다시 살아날까 비는 마음으로 지붕위에 올라가서 망령의 호(號)나 자(字)를 부르며
"복·복·복" 세 번 외치고 나서 지붕에 옷을 던져놓는다.
요즘은 간소하게 하려고 복의(復衣)를 기둥에 매어 두기도 한다.
입관을 하고 난 뒤 복의는 지붕에서 내려놓고 출상 때, 또는 입관 후 내린 즉시 소각하거나,
복의를 시신위에 덮어 두었다가 대렴후에 영좌 앞에 두고, 후일 혼백과 혼백과 같이 묘소에 묻는다.
3) 사자상(使者床)
고복(皐復)이 끝나면 시신이 굳기 전에 반듯하게 눕히고 베개를 베어준다.
솜으로 입과 코를 막고는 양손을 거두고 종이(한지)로 낯을 가린 뒤에
휜 이불 호청으로 덮고 병풍으로 앞을 가린다.
병풍앞에는 사자상을 차린다.
수시가 끝나면 죽은 이의 영혼을 데리러 일직·월직사가 온다고 믿기 때문에
사자상(뱃머리밥 또는 사자밥)을 바로 마당에 차린다.
상가집의 마당 복판에 대문을 향해 차리고 상 위에는 밥·나물·간장을 차리며, 상 앞에 짚신을 놓는다.
염라대왕의 명을 받은 저승사자로 하여금 영혼을 편하게 모시도록 하기 위해 대접하는 것이다.
사자상은 물린 뒤 사자밥은 술 만들 때 넣었다가 삼우제 때 먹는다.
4) 발상(發喪)
고복이 끝나고 자손들이 상제(喪制)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난 것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발상'이라고 한다.
상주는 머리를 풀고 버선을 벗고 왼소매를 빼서 입고, 통곡을 한다.
이러한 상주의 모습을 "죄인형색이라 한다"고 한다.
성복제(成服祭)를 지내기 전까지는 이 같은 형상을 하고 두루마기는 입지 않는다.
호상(護喪)을 선정하여 이후의 모든 장례 절차를 주관 지도하게 하고,
초상이 났음을 외부에 알리는 것으로, 가까운 친척에게는 전령을 보내거나 하여 속히 알리고,
발인 일시와 장지, 하관일시가 정해지면 부고를 작성하여 발송한다.
부고에는 부음(訃音)과 고기(告期)가 따로 있었다.
부음은 어느 집안의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별세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고기는 한 보름 후에 발인 일시와 장지 및 하관 시간을 통기하는 것을 말한다.
3일장, 5일장이 성행하는 오늘날에는 고기는 부고에 통합되어 없어졌다.
부고를 받으면 세속에서는 뒷간이나 대문에 꽂아 두는 일이 많았다.
상주의 금식은 상주의 근력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5) 습(襲), 염(殮), 입관(入棺)
시신을 목욕 시키고(襲), 수의(壽衣)를 입히면(殮), 입관을 하게 된다.
시신을 목욕시킬 때는 머리를 빗기고, 상투를 쪽고, 향탕(香湯 : 향나무 물)으로
솜이나 수건에 물을 적셔 시신을 닦는다.
남자는 남자가, 여자는 여자가 했으나, 요즘은 여자가 의복만 벗기고 남자가 하는 것이 상례다.
밤함(飯含)이라 하여 시신을 굶길 수 없다며 입에 쌀을 세 번 넣는데
입안의 오른쪽-왼쪽-가운데 순으로 넣는다.
처음은 '천석이요', 두 번째는 '이천석이요', 세 번째는 '삼천이요' 라고 외친다..
소렴은 의관을 씌우고 시신을 세부적으로 묶는 것을 말한다.
이때 머리카락, 손톱, 발톱을 깎아 주머니에 넣어 입관시 함께 넣는다.
대렴은 이불을 덮어 묶고는 입관하는 것을 말한다.
혼백은 명주실 세 가닥으로 사람이 이불을 덮고 있는 형상으로 호상이나 백관이 접는다.
혼백은 백의외 속백(束帛)하여 모셨다가 삼우 후에 산소의 오른쪽에 매혼한다.
고인의 유의(遺衣)는 충곽(充槨)에 사용되고 계절별로 한 벌씩만 남겨 한 벌만 빈소에 차려 놓는데,
철따라 옷을 바꾼다.
6) 성복(成服)
성복은 복제(服制)에 따라 상주들이 상복을 입는 절차를 말한다.
상복을 입고 나면 성복제를 지낸다.
성복제는 각각 기복(忌腹) 차림으로 집사가 잔을 올리고 항렬 연장자순으로 복을 입는다.
상주의 옷은 오복도(五福圖)의 다섯 가지 양식에 의거해 지어 입는다.
굴건(屈巾)·두건(頭巾)은 상주의 것을 질이 나쁜 삼베로, 백관의 것은 고운 베·광목·옥양목 등으로 접는다.
가마(加麻)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제자나 친구가 두건에다 가느다란 삼끈으로 테두리를 두른 것을 말한다.
상장(喪杖 : 상이 났을 때 상주가 짚는 지팡이)은 부친상일 때와 모친상일 때가 서로 다르다.
대체로 부친상에는 대나무, 모친상에는 버드나무를 짚는다.
이유는 아버지는 핏줄이므로 숨쉬기 좋으라고 대나무를 쓰고,
어머니는 자손이 번창하라는 뜻으로 버드나무를 쓴다는 것이다.
어느 지팡이를 짚든 뿌리쪽이 위로 향하게 한다.
7) 발인(發靷)
관을 방에서 들고나와 상여로 옮기는 것을 천구(遷柩)라 하고,
상여가 상가를 떠나 장지로 출발하는 것을 발인 또는 출상(出喪)이라 한다.
발인시에는 반드시 발인제를 지낸다.
발인제 때 관의 위치는 천구하여 관을 상여 앞에 두고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
영구(靈柩, 관)을 상여 위에 올려 모셔 놓은 다음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발인제는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발인축을 읽고, 맏 상주는 두 번 큰 절(단작이배;單酌二拜)을 한다.
발인제를 지내고 상여꾼들이 상여를 처음 들어올렸을 때
망자의 집 쪽으로 향하여 세 차례 상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망자가 집을 보고 마지막 하직 인사라 한다.
상두꾼은 보통 남자들이지만 상여가 나갈 때 상여의 뒤쪽에 광목을 길게 늘어뜨려
부인들이 이것을 잡고 따라 가기도 하는데,
이를 '설매' 또는 '배줄'이라 하고 혼이 저승갈 때 타고 가라는 뜻이다.
8) 운구(運柩)와 노제(路祭)
발인 후 상여를 장지로 운반 이동하는 것을 '운구' 또는 '운상(運喪)'이라 하거나 '행상 나간다'고 한다.
운구를 담당하는 일꾼은 '상두꾼'이라 하며, 상여노래의 앞소리를 하는 사람을 '선소리꾼'이라 한다.
운상 때는 맨앞에서부터 명정(銘旌), 영여(靈與), 만장(輓章), 운아삽(雲亞삽),
상여(喪輿), 상주, 백관, 조문객의 차례로 줄을 잇는다.
노제(路祭)를 안 지낼 수도 있지만 운구 도중에 보통 한 차례를 지낸다.
노제는 주로 망령(亡靈)의 친구들이 주제관이 되어 지내므로
원하는 우인(友人)들이 많은 경우는 두서너 차례 지내기도 한다.
노제의 장소는 마을 어귀·골목 어귀·삼거리 등 망령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지날 때 지내는데,
친구들이 사자와의 마지막 하직인사로 지내는 것으로 사자와 이별을 섭섭하게 여겨 행하는 제사이다.
9) 하관(下棺)과 부수 제례(祭禮)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기 전에 장지에서 일하는 일꾼을 '산역꾼'이라 한다.
산역꾼과 지관은 장지 근처의 바위나 개울가에 가서 술, 과일, 어포를 차려 놓고
'오늘 이산에 손님이 들어오니 산신께서는 손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그리고 묘를 쓸 자리에 명태를 막대기나, 삽에 묶어 꽂아 세우고,
그 주위에 술을 뿌리고는, 개토제(開土祭)를 지낸다.
묘자리를 조성하기 위해 구덩이를 팔 때는 묘터의 상·중·하에 술을 붓고,
술을 부은 자리에 괭이로 각기 흙을 파기 시작한다.
이 관중을 파는 것을 '청광 낸다' 또는 '굿 낸다'고 한다.
하관은 천광이 끝나면 지관이 잡아준 하관 시간에 맞추어
상제들이 상에서 관을 운반하여 와서 베끈을 잡고 천천히 하관한다.
하관할 때 상주는 곡을 하지 않는다.
하관은 시신의 머리는 북쪽으로 발은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하관한다.
하관 때 시신을 관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묻는 '동천개'는 쓰지 않고 관채로 묻는데,
이때 지관이 하관을 보면 해롭다고 정해주는 나이의 사람이
하관을 보게 되면 중상을 당한다 하여 하관을 보지 못하게 한다.
발인날이 말날(午日)인 경우 쥐띠인 사람과 죽은이와 상극의 띠를 가진 이가
하관을 보면 죽은 사람이나 산사람 모두에게 해롭다고 하여 보지 않는다.
상주도 마찬가지다.
하관이 끝나면 지관은 관을 바로 잡고 평평한지 여부를 살펴 이상이 없으면
흙덮기에 들어가는데 '복토한다'고 한다.
그리고 봉분이 완전히 성분되었을 때 주과포를 차려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평토제를 지내고 나면, 집사가 영좌(靈座 : 혼령을 안치하는 장소)를 철거하고
상주는 영여에 혼백을 모시고 왔던 길로 되돌아 집으로 오거나,
상여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되돌아온다(다른 길로 와야 귀신이 못 따라 온다고 함).
되돌아올 때 상주들은 영여를 뒤따르는데 이를 반혼이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안상주들이 곡을 하면서 혼백을 맞이한다.
혼백은 빈소에 모셔진다.
그러면 망자에게 반혼을 고하는 제를 지내는데 이를 반혼제(返魂祭)라 한다.
앞에 주과포혜를 진실하고(차려놓고) 술을 치고 축을 읽고 상주들이 두 번 절한다.
10) 기제사(忌祭祀) 전의 각종의례
영좌를 장지에서 반혼하여 와서 혼백을 다시 모시고 난 후부터
담제(嬉祭)를 지내기 전까지 지내는 각종 제사를 묶어 흉제(凶祭)라 한다.
기제사 지내기 전의 각종 제사는 담제를 지내므로써 보통 끝이 난다.
① 우제(虞祭)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뜻으로 지내는 제로 일종의 위령제이다. 우제는 세 번 지내는데, 세 차례 모두 다 그 집안의 기제사 방식(가문에 따라 다름)과 동일하게 지내고 곡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 초우제(初虞祭)
반혼한 혼백을 빈소에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초우제라 한다. 초우제와 반혼제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초우제는 장사 당일에 지내야 한다. 초우제를 지내고 나면 상주 이하 상제들은 비로소 목욕을 할 수 있지만 빗질은 하지 못한다.
- 재우제(再虞祭)
원래는 초우제를 지내고 난 다음날 또는 그 하루 거른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보통은 초우제 지낸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 삼우제(三虞祭)
재우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지낸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비로서 묘역에 갈 수 있다. 상주는 간단한 묘제(墓祭)를 올리고 성분이 잘 되었는지 묘역이 잘 조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살피고 잔손질을 한다.
최근에 와서는 상기(喪期)를 단축할 경우 삼오날(삼우제날) 가서 봉분 옆에 흙을 파고 혼백을 묻는다. 이를 매혼(埋魂)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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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졸곡제(卒哭祭)
삼우제를 지내고 3개월 이후 날을 잡아 졸곡제를 지낸다. 최근에는 상기가 짧을 경우 삼우제가 끝난 뒤 첫 강일에 지내기도 한다.
졸곡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아침 저녁으로 조석을 올릴 때만 곡을 하고, 평시에는 빈소에서 곡을 하지 않는다.
졸곡제 전에는 축문에 상주를 "疏子○○"라 쓰지만 졸곡 후에는 "孝子○○"라고 쓴다.
③ 부제
졸곡제 다음에 지내는 제사로 신주를 조상 신주 곁에 붙여 모시는 제사이다. 사당이 있는 경우 망위(亡位)의 신주를 모셔가서 이미 봉안되어 있는 선망신위(先亡神位)들과 존비·위차에 맞게 자리매김하여 제사를 모신다. 철상 후 빈소로 신주를 다시 모셔온다.
④ 소상(小祥)
사망 후 1년만에 지내는 제사로 제사 방식은 우제와 비슷하다. 먼 친척도 오고 문상객(주로 초상 때 조문오지 못한 사람)도 많이 오므로 음식을 많이 장만해 대접한다. 소상을 치르고 나면 일반적으로 바깥상주와 안상주는 요질과 수질을 착용하지 않는다.
⑤ 대상(大祥)
사망 후 2년만에 지내는 제로 소상과 같은 방식으로 지낸다. 소상 때 보다 많이 오는 큰 행사이다. 보통 대상이 끝나면 사당이 있는 경우 신주는 사당에 안치하고 영좌는 철거한다. 담제를 따로 지내지 않는 경우는 이날 바로 탈상하고 상기(喪期)를 끝내기도 한다.
⑥ 담제
대상 후 두달째 되는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이날 탈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담제 때 탈상하고는 사당 고사를 한번 더 지내는데 이를 길제(吉祭)라한다. 지금은 이 길제도 사라졌다.
이후의 제사는 기제사로서 이는 제례(祭禮)에 포함시키고 상례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