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로 부산 금정구 청룡동에 있다.
시도유형문화재 2호 일주문 - 경상남도 3대 절 중 하나로 유명한 범어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곳 가운데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일주문은 절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를 구분짓는 경계 구실을 한다. 이 건물을 세운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조선 광해군 6년(1614)에 묘전화상이 절내 여러 건물을 고쳐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측한다. 정조 5년(1781)에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보수했다. 앞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은 높은 돌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운 것이 특이하며 모든 나무재료들은 단청을 하였다. 범어사 일주문은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한다는 법리를 담고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1700년(숙종 26) 동계(東溪)가 편찬한 〈범어사창건사적 梵魚寺創建事蹟>에는 신라 흥덕왕(826~835 재위) 때 의상대사가 화엄신중기도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자 왕이 매우 기뻐해 의상을 예공대사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702년에 죽은 의상이 흥덕왕 재위기간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범어사의 창건 연대는 의상이 당에서 귀국한 670년 이후 생존기간의 어느 때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서 의상이 창건하고 그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했다는 범어사는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현감(玄鑑) 등이 법당과 요사채를 갖추어 중창한 이래 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범어사는 산의 지형을 이용해 제일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을 세우고 중단에는 보제루를, 하단에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중심으로 당우를 건립해 전체적으로 3단을 이루는 산지가람 배치로 되어 있다.
보물 434호 대웅전 - 대웅전이란 천지간의큰 영웅(大雄)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놓은 집이라는 뜻으로,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에 미래에 성불하여 부처가 될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과 정광여래로서 과거불인 갈라보살(伽羅菩薩) 등삼세불(三世佛)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의 최초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1602년(선조 35)에 관선사(觀禪師)가 재건 하였으나 불타버렸다고 한다. 지금의 대웅전은 1614년(광해군 6) 묘전화상(妙全和尙)이 건립한 것으로 1713년(숙종 39) 흥보화상(興寶和尙)이 중수한 것이다. 내부의 불단과 닷집, 삼존불상은 묘전화상의 중건 때 조성된 것이며, 불상 개금(改金)은 1824년(순조24)경 해민대사(海敏大師)가 하였다고 전한다.
건물 양식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평면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기단은 불국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가구식 기단으로 면석에 동백잎이 조각·장식된 보기 드문 예이다. 아울러 기단의 동쪽 끝 면석에 ''강희 19년(康熙十九年, 1680년) ''이라고 새겨져 있어 대웅전 기단의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건물 내부의 후불벽화는 비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불단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불단 위의 닫집 또한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화려한 구성으로 천상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천장도 보상화문(寶相華紋)과 연화문(蓮華紋) 등을 초각하여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규모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나 아담한 교창(交窓), 기둥위의 두공(枓供)과 첨자 구조의 섬세함과 아름다움, 닫집과 불단의 조각이 정교하고 섬세하여 조선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보물 250호 삼층석탑 -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통일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시대에 크게 수리를 할 때 기단 아래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밑에 둘러진 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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