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13릉(중국 북경)-정릉2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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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입구 모습. 앞에 보이는 석조물이 석오공이고, 뒤에 보이는 건물이 명루(明樓)입니다. |
13릉의 유래는 정변과 관련이 있다. 명나라 첫 황제 주원장은 도읍을 중국 동남부의 남경에 정했으며 죽은 후 황위를 그의 장손에게 물려주었는데,주원장의 네번째 아들인 주체(朱棣)는 황위를 쟁탈하기 위해 내전을 일으켰으며 나중에 황제로 되었다. 남경이 함락된 후 주원장의 장손이 행방을 잃었으며 지금까지 명나라 역사에 남은 현안으로 되었으나,주체는 즉위한 후 남경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도읍을 북경에 옮겼다.
주체는 재위 기간 동안 사람을 파견하여 릉침을 선택하였는데, 선별을 거쳐 마침내 베이징 서북쪽에 있는 풍경이 아름답고 방어하기는 쉬우나 공격하기 어려운 곳을 자기의 릉침으로 선택했으며 이름을 장릉이라고 명했다. 기원 1409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200여년 동안 건설하였으며 선후로 13명 황제가 이곳에 매장되어 명나라 황제의 능묘군을 이루었다. 그래서 이곳을 명13릉이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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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릉을 향해 향을 피우는 향로가 있는 석오공(石五供)과 석오공에서 올려다 본 명루 |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고 장손에게 나라를 물려줄 때 실수한 것이 바로 공신들을 죽인 것이다. 후에 영리한 공신들이 나라에 정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미리 처단하였는데, 이는 후에 장손에게 왕위를 물려 줄때 장손을 지켜주고, 또 그가 의지할 공신이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장손은 삼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때문에 행방불명된 장손의 무덤은 명13릉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하나의 릉이 각각 하나의 산에 조성되어 있고, 13개의 능이 내부의 비밀 통로를 통해 서로 이어져있다. 명대는 14명의 황제가 통치를 했는데, 경태제를 제외한 모든 역대 황제들은 성조(영락제)릉의 주위에 안치되었다. 13릉의 크기는 서로 다르며,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는 자신의 통치 기간 중에 능의 건축에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았고, 항상 직접 공사 현장에 와서 시찰을 하면서 수정을 하였으므로 릉의 규모도 크고 건축물도 호화스럽게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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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루 왼쪽으로 지하궁전을 갑니다. |
▲ 저 곳이 발굴 당시 입구라고 합니다. |
13릉의 건설에 도대체 얼마의 사람을 동원하였는지는 통계가 어렵다. 능 안에 건설된 전각에 쓰인 목재를 보더라도 놀랄 정도인데, 궁전과 능을 건설하기 위해 쓴 목재는 "황목(皇木)"이라고 한다. 이 목재는 인적이 별로 없고 범과 승냥이가 나타나는 협곡에서 성장하므로 이를 찾고 채벌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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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뿔처럼 생긴 측백나무인 녹각백(鹿角栢)을 지나면... |
▲ 정릉의 지하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
황목을 얻는데는 수 많은 인명 사고가 있었을 것이며, 때문에 황목이 자라는 사천성에는 入山一千, 出山五百(일천명이 산에 들어가면 오백명만 살아 나온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황목은 대대적으로 채벌한 후에도 운반의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우기에 홍수가 나서 산 중턱까지 물이 차면 목재를 물에 띄워 강까지 운반한 후 북경으로 옮겼다. 여기서 뗏목 하나를 북경까지 운반하려면 적어도 5-6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
정릉 지하 궁전 평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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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지하 궁전의 내부 모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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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내부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 보안 검색대 같은 곳을 통과해야 합니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터널 같은 곳을 지나면... |
현재 발굴된 능은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주익균(朱翊鈞)과 효단(孝端), 효정(孝靖) 두 황후가 합장된 대규모 황릉인 정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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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지하 궁전을 들어서서 처음 본 내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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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을 안치했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
1956년 발굴 당시에 황릉의 외곽 성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수도문(隧道門, 터널문)'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발견되어 파 들어가자 '이 돌에서 금강장까지 전방 16장(56m), 깊이 3장5척(11.5m) 아래'라는 비석이 또 발견되어 이를 따라 지하궁전의 입구를 찾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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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력제보좌(萬曆帝寶座) |
1956년부터 1958년까지 3년 동안 발굴한 능묘는 능은문(陵恩門), 능은전(陵恩殿), 명루(明樓), 분구(憤丘)로 이루어졌으며 분구 안에는 현궁(玄宮: 지하 건축물)이 있다. 현궁의 구조는 전전(前殿), 중전(中殿), 후전(後殿), 수도(遂道), 좌배전(左配殿), 우배전(右配殿)으로 되어 있고 전체 길이 80m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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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로를 지나서 다른 방으로 가면 만력제가 앉았던 의자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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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에서 바라 본 만력제보좌 |
일설에 따르면 만력제는 자신의 능 소재를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을 모두 살해했다고도 한다. 또한, 황릉의 입구를 찾아 냈지만 대리석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문을 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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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방은 관이 놓여 있는 묘실입니다. |
▲ 옆의 작은 관들은 금은보화를 가득 넣어두던 관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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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관 중 가운데 관이 만력제, 왼쪽 관은 효정현황후 왕씨, 오른쪽은 효단현황후 왕씨의 관입니다. 정면 사진이 없어서... |
정릉의 주인공인 만력제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 받아서 무려 48년간 재위하여 명대 어느 황제보다도 재위 기간은 길었지만,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않고 주색에만 몰두하여 대명 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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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왔던 곳의 반대 방향에 출구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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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실을 관람하고 출구로 나오면서 안쪽을 바라 본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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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나가는데는 계단을 몇 층 올라가야 합니다. |
명13릉은 당시 황제들이 만 19세만 되면 자기의 무덤을 선택하고 건설해야 했는데 정릉의 주익균은 22살부터 28살까지 지하궁전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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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궁전을 나오면 정면에 명루 뒷편이 보입니다. 내부 중앙에는 커다란 비석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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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궁전을 나와서 뒤를 바라 본 모습입니다. |
▲ 명루 내부에 비석을 보러 갑니다. 출구이기도 하구요... |
정릉을 건설하는데 백은 800만냥(2년치 국가 예산에 해당)이나 소모했다고 한다. 당시 주익균은 자기의 능묘를 지은 후에 황후와 왕비, 대신들을 데리고 자기의 수궁 내에서 큰 연회를 벌려놓고 마음껏 마시면서 즐겼다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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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루 입구에서 안쪽을 바라 본 모습 |
▲ 명루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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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현황제지릉(神宗顯皇帝之陵) - 신종(神宗)은 만력제의 묘호이고, 현황제(顯皇帝)는 시호 |
지하 궁전 내에는 도합 7개의 거대한 돌문이 있으며, 문과 지하 동굴은 모두 한백옥석(漢白玉石)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하 궁전에는 모두 다섯 개의 궁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기둥과 대들보가 없는것이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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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의 관람객을 비교해 보면 비석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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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현황제지릉'이라고 쓰여 있으면 결국, 묘비(능비)란 이야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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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머릿돌) 모습 |
▲ 기단부에 새겨진 조각 |
또한, 지하궁에는 관곽 외에 금, 은, 진주, 보석, 옥기 등 많은 부장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만력 황제의 금관 조각은 머리카락 굵기의 황금실로 정교히 만들어져 있다. 금관 위에는 두 개의 금룡 문양이 박혀 있어서 당시의 높은 공예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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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루에서 석오공 방향으로 내려다 본 모습 |
▲ 뒷편에서는 명루 좌측으로 나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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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루를 돌아 내려가면 정릉의 관람은 마치게 됩니다. 중국 역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 뒤져서 겨우 만들었습니다... |
지하 궁전은 땅 밑으로 27m 깊이에 1,195㎢ 면적의 완전한 석조 구조로 주요하게 전, 중, 후 삼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전전(前殿)은 사무 구역이고, 중전(中殿)은 후손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침실이다. 후전(後殿)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로서 명13대 황제 주익균과 효단, 효정 두 명의 황후 관재가 놓여져 있다. 옛날의 황제들은 본래 한 명의 황후만을 자기 옆에 묻어야만 했지만 만력제는 황후 둘을 자기 옆에 두었다. - 인터넷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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