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38] 신라 경덕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31

신라 경덕왕릉(사적 23호 )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희강왕릉을 돌아 나와서 큰 개천이 있는 곳의 도로를 따라서 한참을 가면 부지리가 나오고 마을로 들어가면 표지판이 보이는 우측 산자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 경덕왕릉 초입 전경

▲ 경덕왕릉 입구 전경

위 좌측 사진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소나무 숲 속으로 200여미터 정도 들어가면 소나무 숲 안쪽에 경덕왕릉이 보입니다. 얖에 보았던 민애왕릉과 희강왕릉과 달리 제대로 된 왕릉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 능역으로 오르기 직전에 바라 본 경덕왕릉 전경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은 성덕왕의 아들이며 이름은 헌영(憲英)이다. 경덕왕 때는 신라 중대왕실의 전제왕권이 쇠퇴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행정구역 개편, 직제개편 등을 단행하였다.

▲ 좌측에서 바라 본 경덕왕릉

경덕왕릉은 경주 시가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복에 위치하고 있다. 외형상 원형봉토분으로서 지름 약 22m, 높이 약 6m이며, 능 하부에는 판석조 호석이 돌려졌다. 호석은 목조건축물의 석조기단과 같은 형태로, 가장 아래에 지대석이 있고, 그 위에 높이 89㎝, 너비 120㎝의 면석이 놓였다. 면석 사이에는 뿌리가 고분 안으로 길게 뻗어 면석과 봉분을 지탱하기 위한 탱석을 배치하였는데, 탱석의 앞면은 면석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다. 탱석에는 두 칸을 건너서 하나씩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 우측에서 바라 본 경덕왕릉

면석과 탱석 위에는 갑석이 놓여 있다. 호석에서 1.3m 밖으로 높이 175㎝의 석주 40여개를 세워 돌난간을 둘렀는데, 지금 석주는 거의 다 남아 있으나 기둥 사이에 끼웠던 난간의 돌살대는 거의 없어졌다.

▲ 경덕왕릉 앞의 제단과 난간석주 모습

호석과 난간석주 사이 바닥에는 길이 110㎝, 너비 약 45㎝의 부채꼴 판석을 정연하게 깔았다. 능 앞에는 안상문이 새겨진 높은 석상이 놓여 있으나, 통일신라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석사·문인석·무인석과 같은 석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 호석 주변 모습

≪삼국사기≫에 의하면 765년 6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경덕(景德)이라 하고, 모지사(毛祗寺) 서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처음 경지사(頃只寺) 서쪽 언덕에 장사지냈다가 뒤에 양장곡(楊長谷) 가운데로 이장하였다고 전한다.

▲ 12지신상 모습

▲ 12지신상 모습

▲ 12지신상 모습

현재 전하는 경덕왕릉의 위치와 문헌기록의 일치여부는 알 수 없고, 또한 호석의 세부수법이나 십이지신상의 조각수법을 신라 하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이 능이 경덕왕의 능인가를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 뒷편에서 바라 본 경덕왕릉

신라 경덕왕릉 위치도

                                    빨간 화살표가 흥덕왕릉입니다.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산8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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