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27] 신라 선덕여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29

신라 선덕여왕릉(사적 182호 )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효공왕릉을 돌아 나와서 도로를 따라서 조금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당간지주가 하나 서 있고, 그 안쪽으로 사천왕사지가 보입니다.사천왕사지를 둘러 보고 있노라면 전방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는데 이 산이 낭산이며, 이 산 자락에 선덕여왕릉이 있습니다.

▲ 사천왕사지 입구 전경

▲ 사천왕사지 전경(뒤에 보이는 산이 낭산입니다.)

신라의 왕 중에는 세 명의 신라 여왕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여왕에 오른 사람이 선덕여왕입니다. 아마도 다른 두 명의 여왕(진덕여왕/진성여왕)보다는 선덕여왕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겁니다.

 

낭산으로 오르는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선덕왕릉 입구란 표지판과 문화재 안내판이 보이며, 이어서 길 옆에 묘비 크기만한 비석이 하나 서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라 왕릉은 평지에 있는 것에 비해서 선덕여왕릉은 높지는 않지만 낭산이란 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산 속으로 들어서면 소나무 사이로 왕릉의 봉분이 보입니다. 선덕여왕릉에서는 마침 할머님 한 분이 봉분을 몇 바퀴 돌면서 무언가를 빌고 계셨습니다.

선덕여왕릉의 봉분 사방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려 있으며,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봉분을 한 화면에 담기 힘들 정도로 근접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은 어두 컴컴하며, 겨울에는 봉분의 윗부분만 조금 녹았을 뿐 봉분에 쌓인 대부분은 눈이 녹지 않고 있습니다.

경주 시가지 동쪽에 있는 낭산(狼山)에 있다. 원형봉토분으로서 지름 23.6m, 높이 6.8m이다. 봉분 밑에는 30-60㎝ 크기의 깬돌 2, 3단으로 호석을 둘렀고, 그 외부에 호석의 높이만한 크기의 돌을 기대어 받쳐놓아 무열왕릉과 같은 호석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십이지신상이나 난간 구조물은 보이지 않고, 기타 장식물도 배치되지 않았다. 전면에 보이는 석상은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在位) 632-647)은 본명이 김덕만(金德曼)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신라 최초의 여왕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백성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에는 당(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정에 힘썼다. 634년 년호를 인평(仁平)으로 고쳤으며, 자장(慈藏)의 청에 의해 645년에 황룡사 구층탑을 세우고, 분황사와 첨성대를 건립하는 등 문화발전에 힘썼다. 또한 김유신과 김춘추의 보필로 선정을 베풀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47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왕의 유언에 따라 낭산(浪山)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지기삼사(知幾三事)로 유명한 일화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으로 죽을 날을 미리 예언하고 자신이 죽으면 이천(利天) 가운데 묻어달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그곳이 어딘지 몰라 물으니 왕이 낭산 남쪽이라고 하였다. 예언한 날에 왕이 돌아가자 예언대로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문무왕 때에 이르러 능 아래쪽에 사천왕사를 지으니 불경에 사천왕 위에 이천(利天)이 있다고 한 것과 일치되어 왕의 영성(靈聖)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선덕여왕릉 위치도

                   선덕여왕릉은 화살표 아래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79-2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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