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15] 신라 무열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27

신라 무열왕릉(사적 20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4기의 신라 왕릉(문성/헌안/진지/진흥왕릉)이 있는 경주 서악리 삼층석탑(보물 65호)이 있는 곳을 먼저 가 보아도 되고, 도로 초입에 있는 무열왕릉을 먼저 보셔도 됩니다.

▲ 무열왕릉 입구 전경

▲ 무열왕릉비가 안치된 비각 전경

무열왕릉 권역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성역화 사업으로 조경이나 환경 개선으로 능역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 비각이 하나 있는데, 비각 안에 있는 비가 국보 25호인 신라 태종 무열왕릉비입니다.

▲ 무열왕릉비의 정면 및 측면 전경

신라 태종 무열왕릉비는 무려 1,300여년이 지나서 비몸은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습니다만, 개인적인 소견으로 이수는 당시의 것 같으나 귀부는 후에 다시 만든 것 같습니다. 돌의 재질도 틀리고 형태로 보아서는 1,000년도 훨씬 못미치는 것 같습니다.

▲ 무열왕릉비의 후면 및 이수 모습

국보 제25호인 신라 태종 무열왕릉비는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이다.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은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비(碑)들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비각안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위로 머릿돌만이 얹혀져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주위로 연꽃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머릿돌 좌우에는 6마리의 용이 3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 놓아 비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건립되었으며,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로 비문을 새겨 놓았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며,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능숙하게 빚어낸 기법에서 당시 석조 조각의 발달상을 엿볼 수 있다.

▲ 무열왕릉 원경

▲ 무열왕릉 앞의 상석(?)

비각 바로 안쪽으로는 사방이 소나무로 둘려져 있는 중앙에 큰 봉분이 하나 있는데 이 능이 바로 무열왕릉입니다. 신라 왕릉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봉분만 덜렁하게 있어서 큰 봉분 이외에는 볼 것이 없습니다. 봉분 정면 앞에는 제사를 지내는 상석 비슷한 돌판이 있는데, 이 것도 근대에 새로 해 놓은 것 같습니다.

▲ 무열왕릉 좌우측 전경(좌우앞뒤를 구분하기도 힘듭니다.)

무열왕릉은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끝부분에 종렬한 5기 대형분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원형의 봉토분으로 주위 둘레 110m에 높이가 11m이며, 매장주체는 횡혈식석실일것으로 추정된다. 분구의 언저리에는 호석을 받치는 자연석 받침돌들이 나와 있다.

전방 동북쪽에는 국보 제25호로 지정된 능비가 있는데 현재는 비신을 잃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장방형의 대석 위에 거북 모양이 올려진 것으로, 네 발과 머리의 표현은 사실적이며, 등의 전면에는 귀갑문을 시문하고 그 주위엔 비운문을 돌렸다. 이수는 좌우에 삼룡식 육룡을 표현하고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으로 조각하였다. 이수 전면 중앙에는 전서로서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 양각되어 있는데《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속(續)에 의하면 김인문이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이 능은 신라의 역대 왕릉 가운데 피장자가 명확한 능이다. 이 왕릉의 주인공인 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은 본명이 김춘추(金春秋)이고 진지왕의 손자이며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왕비는 김유신의 동생인 문명부인(文明夫人)이다.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眞骨) 출신 왕으로서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서기 660년 6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는 무열(武烈)로, 묘호는 태종(太宗)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하는데 영경사 자리가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능 동쪽에 삼층석탑이 있어 이곳을 영경사지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기록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수의 비문을 고려할 때 그 후방의 묘가 무열왕릉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능역에 담을 돌려 쌓고 능 주위에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1972∼1973년의 공사결과이다.

무열왕릉 안내도

무열왕릉 위치도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92-2                                          화살표 바로 위에무열왕릉이 있음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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