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07] 신라 탈해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24

신라 탈해왕릉(사적 174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헌덕왕릉에서 탈해왕릉으로 가는 중간에 디카의 배터리가 완전히 소진되어서 카메라가 작동이 되질 않았습니다. 찜질방에서 백업 밧데리를 충전을 했어야 하는데, 배터리 하나로 충분할 것 같아서 충전을 하지 않았더니만 이런 난감한 일이...

 

일단은 탈해왕릉으로 걸어가면서 고민을 하던 차에 다행히 도로 옆에 파출소가 보였습니다. 무작정 파출소로 들어가서 여차여차 설명을 드리고 냉수도 얻어 마시며 10여분간이나마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 탈해왕의 사당인 숭신전 전경

경북 문화재자료 255호인 숭신전은...

 

광무 2년(1898)에 군수 권상문이 신라 제4대 임금인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1906년부터는 신라의 3성 시조 임금(박, 석, 김)을 같이 모셨고 이때부터 ‘숭신전’이라고 불렀다. 처음 지을 때 월성 안에 있던 것을 1980년 월성 안의 민가 철거와 함께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으며 봄·가을과 춘분·추분에 걸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신라 3대 왕의 성 가운데 최초의 석씨 왕인 탈해왕(57∼80)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한다. 왜국 동북쪽 멀리 떨어져 있는 타파나국 왕비가 잉태한지 7년만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알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짝에 넣어 바다로 띄어 보냈고 이 궤짝이 신라 땅에 가서 닿았다.

 

한 노인이 궤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키웠는데, 건질 때 까치들이 울며 따라 왔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자를 떼어내고 ‘석(昔)’으로 성을 삼았다. 이름은 궤를 풀고 나와 탈해라 지었다고 한다. 숭신전은 본전 3칸·전사청 2칸·상의재 4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 탈해왕릉 입구에서 바라 본 숭신전 전경

▲ 숭신전 방향에서 바라 본 탈해왕릉 원경

소나무 숲이 우거진 탈해왕릉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에 사당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 곳이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는 곳인 숭신전이 보입니다.

▲ 탈해왕릉 입구 전경

탈해왕릉은 소나무가 우거진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 우측의 소나무들은 비비 틀어진 모습이 나름대로 멋있습니다. 왕릉 주변의 소나무들은 왕릉을 향해서 쓰러질 듯이 기울어져 있는 모습니다. 탈해왕릉의 봉분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만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 탈해왕릉 전경

신라 제4대 왕인 탈해이사금(脫解尼師金, 재위 57-80)은 석씨(昔氏)로 토해이사금(吐解尼師金)이라고도 하며,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무덤은 경주 시가지 서북방 표암(瓢巖) 근처에 위치하며 송림(松林)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리왕(琉璃王)의 유언에 따라 62세에 왕이 되었는데 난생설화(卵生說話)를 가지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왜국 동북 1,000리 지점에 다파나국의 왕비가 알을 낳았는데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처음에는 금관국(金海)에 닿았으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아무도 거두지 않았고 다시 진한(辰韓)의 아진포(阿珍浦)에 닿았는데 노파가 거두어 키웠다. 궤짝이 떠오를 때 까치 한 마리가 따라다니며 울었다고 하여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를 떼고 석(昔)으로 성을 삼고, 아이가 궤를 풀고 나왔다 해서 이름을 탈해(脫解)라 지었다.

 

탈해왕은 석(昔)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 석씨 왕이 되었다. 기록에는 재위 24년에 왕이 돌아가니 성(城) 북쪽 양정구(壤井丘)에 장사지냈다고도 하고 또는 소천구(疏川丘) 속에 장사지냈다고도 하였으나 양정구나 소천구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신라에서 탈해왕(脫解王) 시기에 이와 같은 봉토분은 출현하지 않았으며 그 위치로 보아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일 것으로 추정된다.

 

능의 전면은 평지이지만 후면은 얕은 경사를 이루고 있다. 봉분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으며, 호석을 설치했던 흔적도 외형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봉분의 전면에 놓여 있는 상석은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높이 4.5m, 지름 14.3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신라 탈해왕릉 위치도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17         탈해왕릉은 화살표 맨 위에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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