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06] 신라 헌덕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24

신라 헌덕왕릉(사적 29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내물왕릉을 돌아 나와서 동선을 따라서 석빙고와 임해전지(안압지), 경주박물관을 둘러보고 박물관 매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나서 황룡사지, 분황사를 둘러보고 헌덕왕릉을 물어 물어 찾아갔습니다. 더운 여름에 아침부터 하루 종일 걸어서만 다니다 보니 헌덕왕릉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의 탈진 상태였습니다.

▲ 헌덕왕릉 초입에서 바라 본 원경

▲ 헌덕왕릉 입구에서 바라 본 전경

헌덕왕릉은 마을 안쪽의 논길로 들어서면 저 멀리 논 중간에 소나무가 울창한 곳이 보입니다. 이 소나무 숲 한 가운데 헌덕왕릉이 있습니다. 그 동안 몇 차례 소개한 신라왕릉과는 달리 봉분에 호석과 난간석이 둘러 있었습니다.

▲ 헌덕왕릉 봉분 좌우 전경

호석에는 12지신상 중에서 현재는 5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동안은 덩그러니 큰 봉분만 보아서 신라 왕릉은 모두 봉분 이외에는 묘역 주변에 볼 것이 없는가보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헌덕왕릉에서 처음으로 봉분에 호석과 난간석을 두른 모습과 호석에 새겨진 12지신상의 일부라도 볼 수 있었고, 조선조 왕릉의 호석, 난간석과는 또 다른 모습을 처음 접하다 보니 다소 흥분도 되었습니다.

▲ 헌덕왕릉 봉분 호석(둘레석)에 새겨진 12지신상 모습

경주 북천변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의 능(陵)은 원형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金彦昇)이며, 조카인 애장왕(哀莊王)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 동안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시호를 헌덕(憲德)이라 하고 천림사(泉林寺)의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구당서(舊唐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831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천림사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이 왕릉의 남쪽에 사지(寺址)가 있어 이를 천림사 터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흙으로 쌓은 둥근 봉토분인데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넙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사이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다. 탱석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 12지신상 중에 돼지(亥)·쥐(子)·소(丑)·호랑이(寅)·토끼(卯) 등 5개상만이 남아있다.

 

또한, 호석 밖으로는 석주를 세워 돌난간을 설치하고 호석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판석을 깔아 회랑으로 하였다. 난간 석주는 상하로 두 개의 원공이 뚤려 관석을 끼우게 되어 있으나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외에는 아무런 외호물이 없다. 아마도 이 능의 전방으로 흐르고 있는 경주의 북천이 범람하여 능의 일부가 유실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된 것으로, 둘레돌의 일부와 돌난간석을 새로 만들었다.

1930년대 헌덕왕릉 발굴

연합뉴스 | 입력 2010.08.25 08:40

 

(서울=연합뉴스) 1930년대 일본 건축학자 노세 우시조(能勢丑三)에 의한 경주 헌덕왕릉 발굴조사. 노출된 십이지상 옆에 노세가 포즈를 취했다. 2010.8.25 < < 문화부 기사참조, 주류성 제공 > >

taeshik@yna.co.kr (끝)

신라 헌덕왕릉 위치도

 지도 좌측 상단의 A 부분에 헌덕왕릉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동천동 80

 지도 우측 하단의 A 부분에 헌덕왕릉이 위치.      경주시청이나 경주역을 기준으로 위치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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