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01] 경주 노동리 고분군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21

경주 노동리 고분군(사적 38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조선 왕릉과 고려 왕릉에 이어서 신라 왕릉을 사진으로 간단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경주 부근에 산다면 샅샅히 뒤져 보겠으나 서울에서 경주는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서... 최근 2년 사이에 2~3 차례 경주 답사시에 가 보았던 25곳의 왕릉들을 근간으로해서 광나루의 신라 왕릉 여행을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경주는 고등학교 수학 여행을 시작으로 청년 시절 그리고 결혼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여러 차례 가 보았으나 누구나 그렇듯이 경주에서 가는 곳은 뻔했습니다. 문화유산을 알고부터 경주에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이 있지만 올해는 신라 왕릉 중에서 미답지 10여곳을 모두 가 보는 것이 최대 목표입니다.

신라 왕릉 답사가 마무리되면 다음에는 경주 남산의 문화유산을 정복해 보고자 합니다만, 최소한 4~5일은 걸릴 것으로 예측되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역사적인 내용들이야 책이며, 인터넷에 널려 있으나 실제로 문화유산 한 곳 한 곳을 혼자서 찾아가기는 너무 어렵더라구요. 또한 찾았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못 보고 오는 경우도 있구요...

 

외지인이 안내자 없이도 경주에 있는 모든 문화재들을 쉽게 찾아 갈 수 있도록 교통/지리 정보 그리고 답사지에 가서 초답자들이 못보는 것들 또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자료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는 사이트를 알고 계시면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2005년 어느 날, 밤을 꼬박 세웠는데, 밤새도록 비가 내리더군요. 가족들이 곤히 자고 있는 새벽에 몽유병자처럼 무작정 집을 나와서 부산행 첫 고속 버스에 올랐습니다. 30여년만의 무단 가출이라 사춘기 청소년처럼 다소 흥분도 되었지만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으리라...

 

여차 여차해서 이틀 뒤에는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경주역에 도착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지막 왔던 것이 한 15년 전쯤이라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일단은 시장기를 해결하고는 물어 물어서 겨우 찜질방을 찾았으며, 이후로도 몇 차례 이용하였습니다.

다음 날, 경주 지리를 잘 몰라서 일단은 경주역에서 가깝고 찾기 쉬운 고분군부터 가기로 하였습니다. 지도를 보니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이 있고, 대릉원이 있더군요. 뒤에 알고 보니 대릉원은 옛날에는 천마총이라는 곳 이었습니다. 옛날에 경주에 오신 분들은 대릉원보다는 천마총이라고 해야 아실 것 같습니다.

 

경주역에서 1km 정도 걸어서 노동리 고분군에 당도하니 눈 앞에 큰 고분이 보이는데, 봉분의 크기가 엄청 크더군요. 이 봉분이 우리나라 고분 중에서 제일 큰 봉분으로 봉황대라고 합니다. 특히, 봉분 중간에 몇 백년은 되었음직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뒷편으로 돌아가 보니 2기의 고분도 있었는데 한 기는 봉분 흔적만 있고, 또 다른 한 기의 봉분은 중간 부분이 없어서 고분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이 2기의 고분은 1924년에 발굴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이 2기의 고분 역시, 고 신라시대 무덤들로 식리총·금령총으로 불리우고 있었습니다.

▲ 큰 봉분(봉황대) 우측에 봉분이 없는 고분(금령총)과 봉분이 반쯤있는 고분(식리총) 전경

경주 중심부인 노동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고 신라시대 무덤들로, 봉황대·식리총·금령총 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높이 22m, 지름 8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이다. 봉황대 남쪽에 있는 식리총은 봉분 높이 6.5m, 지름 30m로 1924년에 조사한 결과 덧널(곽)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임이 밝혀졌다.

 

내부에서는 귀고리, 유리옥의 가슴장식과 은제허리띠, 은팔찌,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쌍룡 고리자루큰칼, 말갖춤(마구), 옷칠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이나 금동관이 없는 대신 금동제신발(식리)이 발견되었는데, 문양이 독특하고 매우 우수하여 이 무덤의 이름을 식리총이라 하였다.

봉황대의 남쪽에 있는 금령총 역시 1924년에 조사된 무덤으로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 바닥에 냇돌과 자갈을 깐 높이 4∼5m, 지름 약 18∼20m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금관, 금제귀고리, 금팔찌, 금제허리띠,동제신발, 철제솥, 옷칠그릇, 유리그릇,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 중 배모양 토기와 기마인물 토기가 특이하다. 이 무덤은 규모가 작으며, 금관과 장신구의 크기가 작고 순장의 흔적이 보여 신라 왕자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식리총과 금령총은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봉황대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리 고분군 금령총에서 발견된 유물이 국보로 지정...

▲ 도제 기마 인물상(국보 91호)

경주시 금령총에서 출토된 한 쌍의 토기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인상은 높이 23.4㎝, 길이 29.4㎝이고, 하인상은 높이 21.3㎝, 길이 26.8㎝이다. 경주시에 있는 금령총에서 1924년에 배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으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하여 저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주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두 인물상은 두꺼운 직사각형 판(板)위에 다리가 짧은 조랑말을 탄 사람이 올라 앉아있는 모습이다. 말 엉덩이 위에는 아래로 구멍이 뚫린 등잔이 있고, 앞 가슴에는 물을 따르는 긴 부리가 돌출되어 있어 비어있는 말의 뱃속을 통해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다.

두 인물상의 모습은 말 장식이 화려한 주인상의 경우 고깔 형태의 띠와 장식이 있는 삼각모(三角帽)를 쓰고 다리위에 갑옷으로 보이는 것을 늘어뜨렸다. 하인상은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등에 짐을 메고 오른손에 방울같은 것을 들어 길 안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인물상은 신라인의 영혼관과 당시의 복식, 무기, 말갖춤 상태, 공예의장 등에 대한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경주 노동리/노서리 고분군 항공 사진

총(塚), 분(墳)은 어떻게 다른가? 총(塚)은 다른 유적에서는 발견된적없는 특이한 유물이 발견된다든지. 뭔가 다른 무덤과 차별되는 특이한 사항이 있을때 붙인다. 천마총의 경우 그곳에서 천마도가 발견되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무용총은 그곳에서 무용하는 벽화가 발견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각저총은 각저(씨름)하는 그림이 발견되서 붙여진이름이고, 장군총이나 황남대총처럼 유달리 규모가 큰 이유로 붙여진 이름도 있다.

분(墳)은 아무 특별한 특징이 없는 평범한 무덤일때 쓴다. 무덤이 모여서 고분군을 이루고 있을때는 위치한 동네와 고유번호로 이름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경주 노동리/노서리/황남리 고분군 항공 사진

 ▲ 중앙의 제일 넓은 고분이 대릉원이고, 윗편 도로 건너서 좌측은 노서리 고분, 우측이 노동리 고분입니다.

경주 노동리 고분군 위치도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노동동 261

 

지도 우측 상단이 경주역이고, 하단 좌측의 빨간 깃발들이 있는 곳에 3곳의 고분군이 있습니다.

 

경주역에서 노동리 고분까지의 거리는 1km 정도 됩니다.

 

3개의 깃발 중에서맨 위의 빨간 깃발이 노동리 고분군입니다.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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