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노서리 고분군(사적 39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노동리 고분군 바로 길 건너편에 노서리 고분군이 있는데, 이 곳에는 10여기가 넘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고분군 입구를 들어서면 중간에 길이 나 있고, 우측에는 넓은 공터와 안쪽으로는 큰 봉분 한 기가 보이는데, 이 봉분이 서봉황대입니다. 그리고 중앙 통로 좌측으로는 10여기의 크고 작은 봉분들이 몰려 있습니다. |
▲ 서봉총 자리(좌측에 보이는 봉분은 서봉황대임) |
▲ 스웨덴 황태자가 고분 발굴에 참여했다는 기념비 |
우측 넓은 공터 앞쪽에 검은 표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스웨덴 황태자가 고분 발굴 조사에 참여했다는 기념비였습니다. 이 자리는 1926년 발굴 당시 내방한 스웨덴 황태자(서전 황태자 - 瑞典 皇太子)를 기념하여 서봉총(瑞鳳塚)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발굴 후에는 봉분을 새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네요... |
▲ 서봉총에서 바라 본 왼쪽 고분군 전경 |
▲ 우측의 사람을 보면 봉분의 크기를 짐작하실 수... |
1926년에 발굴 조사된 서봉총은 표형쌍분의 북분으로 봉황형 장식을 얹은 금관이 출토되었고, 마침 발굴 당시 내방한 스웨덴 황태자(서전 황태자 - 瑞典 皇太子)를 기념하여 서봉총(瑞鳳塚)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서봉총에서는[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명문이 있는 은합이 출토되었는데, 신묘(辛卯)는 서기 391년 또는 451년으로 추정된다. 해방 후 최초의 유적 발굴이었던 1946년 호우총 조사에서는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을 기념하여 을묘년(乙卯年)(서기 415년)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는 동합이 출토되어 유명하다. |
▲ 노서리 고분군 좌측 안쪽 전경 |
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아 나오면 크고 작은 봉분들이 밀집되어 있고, 발굴이나 도굴되었는지 봉분이 없는 고분도 몇 기 있었습니다. 신라나 백제의 고분이나 왕릉들은 큰 봉분 이외에는 볼 것이 없어서 조선조 왕릉에 비하면 답사하는 재미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 노서리 고분군 입구 좌우측의 봉분이 없는 고분 전경(우측 사진이 금관총임) |
경주시 서북쪽 노서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현재 1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남아있다. 그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제130호 무덤은 노동동 고분군의 봉황대와 대칭을 이루어 서봉황대라 불린다. 노서리 고분군의 내부구조는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분)과 굴식 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금관총·서봉총·호우총·은령총·제138호 무덤들은 신라 때의 것으로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 덧널(곽)을 설치하고 냇돌과 자갈로 쌓은 돌무지 덧널무덤이다. 쌍상총·마총·우총 등은 내부에 깬돌로 사각형의 널방(석실)을 만들고 널길(연도)을 둔 굴식 돌방무덤으로 통일신라 때의 것이다. 금관총은 1921년에 조사되었는데,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각종 호화로운 금공예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서봉총은 표주박 모양 쌍무덤의 북쪽 무덤으로, 봉황장식이 달린 금관이 출토되었다. 또한 연대를 새긴 은으로 된 뚜껑이 있는 그릇(은합)이 출토되어 5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은령총과 쌍무덤을 이루는 호우총은 광복 후 최초의 유적발굴로 광개토대왕을 기념하여 을묘년(451)에 만들었다는 글자가 쓰여진 동합이 출토되었다. 쌍상총·마총·우총 등은 통일신라 초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대부분 도굴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쌍상총에서는 통일 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마총에서는 말뼈와 안장틀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노서리 고분군은 노동리 고분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돌무지덧널무덤과 전기 돌방무덤이 밀집해 두 종류의 무덤 교체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경주 지역의 무덤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노서리 고분군 금관총과 서봉총에서 발견된 유물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 |
▲ 금관총 금관(국보 87호) |
▲ 금관총 과대 및 요패(국보 88호) |
금관총 금관은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금관총에서 발견된 신라의 금관으로, 높이 44.4㎝, 머리띠 지름 19㎝이다. 금관은 내관(內冠)과 외관(外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금관은 외관으로 신라금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원형의 머리띠 정면에 3단으로 ‘출(出)’자 모양의 장식 3개를 두고, 뒤쪽 좌우에 2개의 사슴뿔모양 장식이 세워져 있다. 머리띠와 ‘출(出)’자 장식 주위에는 점이 찍혀 있고, 많은 비취색 옥과 구슬모양의 장식들이 규칙적으로 금실에 매달려 있다. 양 끝에는 가는 고리에 금으로 된 사슬이 늘어진 두 줄의 장식이 달려 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달았으며, 줄 끝에는 비취색 옥이 달려 있다.
과대는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여 만든 허리띠를 말하며, 요패는 허리띠에 늘어뜨린 장식품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허리띠에 옥(玉)같은 장식품과 작은칼, 약상자, 숫돌, 부싯돌, 족집게 등 일상도구를 매달았는데, 이를 관복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나 신라에서는 관직이나 신분에 따라 재료, 색, 수를 달리하여 그 등급을 상징하였다. 금관총 과대 및 요패는 무늬를 뚫어서 조각한 수법이 매우 정교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
◀ 서봉총 금관(보물 339호) | |
경주 노서동 신라 무덤인 서봉총에서 출토된 높이 30.7㎝, 지름 18.4㎝, 드리개(수식) 길이 24.7㎝인 금관이다.
이 가지 주위에는 2줄씩 점선을 찍어 금판이 휘지 않도록 했고, 나뭇잎 모양의 원판과 굽은 옥을 달았다. 山자형 장식의 좌우에는 끝이 꽃봉오리 모양으로 마무리 된 사슴뿔 장식을 세웠고, 이 곳에도 원판과 옥으로 장식했다. |
경주 노동리/노서리 고분군 항공 사진 |
총(塚), 분(墳)은 어떻게 다른가? 총(塚)은 다른 유적에서는 발견된적없는 특이한 유물이 발견된다든지. 뭔가 다른 무덤과 차별되는 특이한 사항이 있을때 붙인다. 천마총의 경우 그곳에서 천마도가 발견되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무용총은 그곳에서 무용하는 벽화가 발견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각저총은 각저(씨름)하는 그림이 발견되서 붙여진이름이고, 장군총이나 황남대총처럼 유달리 규모가 큰 이유로 붙여진 이름도 있다. |
경주 노서리 고분군 항공 사진 |
▲ 중앙의 제일 넓은 고분이 대릉원이고, 윗편 도로 건너서 좌측이 노서리 고분, 우측은 노동리 고분입니다. |
경주 노서리 고분군 위치도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노서동 104
지도 우측 상단이 경주역이고, 하단 좌측의 빨간 깃발들이 있는 곳에 3곳의 고분군이 있습니다.
3개의 깃발 중에서맨 좌측의 빨간 깃발이 노서리 고분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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