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담덕(談德)이며,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이다.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로서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이를 줄여서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으로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재위시의 칭호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었는데, '영락(永樂)'은 한국에서 사용된 최초의 연호로 알려져 있다.
386년(고국양왕 3)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391년 고국양왕 사후에 즉위하였다. 즉위 초부터 대방(帶方)을 탈환하고자 백제의 북쪽을 공격하여 석현(石峴) 등 10성을 함락하였고, 396년(광개토왕 6)에는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으며, 왕제(王弟)와 대신 10인을 볼모로 삼아 개선하였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이동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의 원군을 보내어 왜구를 격퇴시켰으며, 동예(東濊)를 통합하고(410), 신라와는 하슬라(何瑟羅)를 경계로 삼았다. 또 연(燕)나라의 모용희(慕容熙)를 반격하여 신성(新城)·남소(南蘇)의 2성 등 700여 리의 땅을 탈취하였고, 405∼406년 후연(後燕)의 모용희의 침입을 2번 받았으나 요동성(遼東城)과 목저성(木底城)에서 모두 격퇴하였다. 407년 모용희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高雲)과는 수교를 맺기도 하였다.
410년에는 동부여(東夫餘)를 정벌하여 64성을 공파함으로써 동부여가 고구려의 판도 안에 들게 되었다. 또한 남하하여 한강선까지 진출하였으며,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하고 요동지역을 확보함으로써 만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능은 소재 미상이나 414년 장수왕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건립한 광개토대왕릉비에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412년, 삼국사기에는 413년으로 사망년도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2006년 8월 당시 방문 하였을 당시의 사진입니다..
백두산 & 고구려 답사의 제목을 방문 답사때 이곳에는 광개토대왕릉비와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광개토대왕 총으로 불리우는 광개토대왕릉이 존재합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많은 손상되고, 곧 무너질것만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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