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송씨(鎭川宋氏)
진천(鎭川)은 충청북도(忠淸北道) 북서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 금물노군(今物奴郡) 또는 수지군(首知郡)·신지군(新知郡) 등으로 불렸다가 5세기 후반 신라의 북진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어 484년(소지왕 6) 만노군(萬弩郡)이 설치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 흑양군(黑壤郡)으로 개칭하였고, 도서현(都西縣)과 음성현(陰城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와서 강주(降州)로 불렸다가 진주(鎭州)로 개칭하였고,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청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259년(고종 46)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 분리하여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269년(원종 10)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진천으로 강등되어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진천현으로 되어 현감(縣監)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진천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북도 진천군이 되었다. 1973년에 진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진천송씨(鎭川宋氏)는 신라시대 대아찬(大阿湌)을 지낸 송순공(宋舜恭)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 후 송인(宋仁)의 대(代)까지 16세(世) 340년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 없었다. 그 후 고려시대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인을 일세조로 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벼슬을 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많은 공적을 쌓았다. 찬화공신(贊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으며 진천백(鎭川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진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고 한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전서공파(典書公派), 낭장공파(郎將公派), 안성공파(安城公派), 송정공파(松亭公爬), 참의공파(參議公派)로 나뉘어졌다.
고려문하시중평장사송공인지묘
뒷줄 왼쪽부터 2세 원겸(元謙)-3세 희(憘)-4세 언기(彦琦)/ 앞줄 왼쪽부터 4세 유신(由信)-3세 국첨(國瞻)-5세 지백(之伯) 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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